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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리스펙트] 세상을 못 바꾸는 정치혐오 / 허승규

등록 2019-06-23 17:13수정 2019-06-24 13:53

생각의 차이로 칼부림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인류 역사가 그렇다. 1600년대, 유럽에선 교회파와 성당파가 30년 전쟁을 했다. 민중 해방을 위해, 자유와 평등의 한반도를 만든다고, 민중들 수백만명이 죽어간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채 안 되었다. 칼 대신 말로 싸우는 곳이 의회와 정치다. 의회 정치는 기득권만의 공간이 아니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칼부림과 몸싸움은 결코 약자들에게 유리하지 않다. 재벌이 고용한 용역깡패를 녹색당원들이 힘 모은다고 이길 수 있는가. 나는 2016년 여름 서울 옥바라지 현장에서 용역들에게 끌려 나온 적이 있다. 피, 땀, 눈물이 뒤섞인 현장이었다. 내가 평생 이소룡처럼 산다고 용역을 이길 수 있을까?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 선택하는 최후의 방법이 일상적인 정치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상극의 존재들끼리 살아간다. 나는 태극기 집회에서 위협을 느낀 적이 여러번 있다. 녹색당 배지를 가리거나 집회를 우회해서 걸어간 적이 있다. 경북 안동에서 녹색당 이름으로 출마한 나도 쫄릴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극단적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숙명이라면, 그들의 열정이 의회 안에서, 정치 안에서 소수파로 수렴되는 것이 안전하다. 상극의 존재들끼리 갈등을 칼부림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다루는 것은 정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들이 다수파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정치 경쟁으로 대응해야 한다. 법적인 규제는 한계가 있으며 자칫하면 민주주의의 토대를 파괴할 수 있다. 범죄를 처벌할 순 있어도 생각을 처벌할 순 없다. 가장 적대적인 시민들 간의 긴장을 끌어안아야 하는 숙명이 의회, 정당, 정치에 있다. 타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싸우지 말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억압된 갈등이 제대로 선거, 의회, 정당에서 표출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갈등이 분명해야 타협도 가능하다.

태극기 세력의 국회 진출은 규제가 아닌 정치 경쟁으로 맞서야 한다. 녹색당을 비롯한 정당들의 몫이다. 국회해산, 국민소환, 정당해산 등의 주장은 듣기에는 좋을 수 있으나 태극기 집회에서 느꼈던 공포를 완화하는 데 빛 좋은 개살구다. 그들의 위협을 줄이고 싶다면 정치 바깥의 시민들을 조직하고, 정치 경쟁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억압된 갈등을 정치의 공간으로 끌고 와야 한다. 다양한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정치 악법도 바꿔야 한다. 투표소의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고, 청소년 시민권을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2020년 총선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다. 기독자유당, 대한애국당 같은 정당과 선거에서 정면 승부해야 한다.

진보개혁파라 불리고 사회운동을 실천하고 여성·노동·생태·평화·소수자·마을공동체 운동을 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고민과 역량의 한계에 대한 성찰 없이 기존 기득권 정치 탓만 하거나, 결국 의회·선거·정당 정치는 노답이라고 여기는 사고는 수백년간 피땀 흘려서 이룩한 현대 민주주의의 다양한 성과를 놓치는 일이다. 부족하지만 변화의 역사 가운데 새로운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박정희 반대편의 정치혐오 정서도 넘어서자. 현장과 정치, 운동과 정치를 고르라는 것은 양말과 구두를 고르라는 거다. 양말과 구두는 선택이 아닌 깔맞춤의 문제다. 현장이 곧 정치요, 정치가 곧 현장이다. 정치혐오가 아닌 정치긍정이 세상을 바꾼다.

허승규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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