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당신에겐 어떤 문장이 있는가? 당신에게 쌓여 있는 문장이 곧 당신이다. 당신을 사로잡던 말, 당신을 설레게 하고 가슴 뛰게 한 말, 내내 오래도록 저리도록 남아 있는 말이 당신을 만들었다. ‘집은 사람이 기둥인데, 사람이 없으니…’ 할머니는 기울어지는 가세를 낡은 기둥에서 눈치챘다. 철학은 말을 음미하고 곱씹고 색다르게 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어느 학생은 ‘오른쪽’이란 말을 ‘북쪽을 향했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이라는 사전 뜻풀이가 아닌, ‘타인과 함께 있기 위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매력적인 뜻으로 바꾸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오른쪽 귀를 앓아 늘 다른 사람 오른쪽에 있었다. 몸의 철학이다. ‘흙먼지 속에 피어 있는 것이 기특해서 코스모스를 좋아한다’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말 한마디의 철학.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이치. 고유어도 좋고, 한자어도 좋다. 주워들은 말이면 어떻고 책에서 길어 올린 말이면 어떤가. 매일 쓰는 말을 재음미해 보라. 그런 말에 다른 뜻을 덧입혀 다시 말해 보자. 휴대전화를 꺼내 사전 찾기 놀이를 해 보라. 예를 들어 ‘우듬지’ ‘간발(의 차이)’ ‘소인(消印)’ ‘며느리밑씻개’ ‘미망인’. 그러다 보면 몰랐던 뜻이 툭 솟아올라 놀라기도 하고, 말이 이 세계의 부조리를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지 알고 가슴을 치기도 할 것이다. 우리 각자가 말의 주인이 되어 삶의 철학을 늘 탐구할 때라야 막말, 선동,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지금의 정치언어에 놀아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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