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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동춘 칼럼] 법대로 하면서 돈 벌 수는 없나

등록 2019-06-04 16:48수정 2019-06-04 21:30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온 국민을 기쁘게 했지만, 제작 과정에서 표준근로계약을 지키고서 이런 상을 받았다는 것이 더 큰 화제가 되었다. 영화 스태프들에게 4대 보험 가입, 초과근무수당 지급, 계약기간 명시 등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을 지키면 당연히 제작비가 늘어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 영화를 제작했고, 이러한 큰 상을 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 전의 ‘성공한’ 한국 영화들은 스태프들에게 돌아갈 임금, 재충전 시간, 땀과 노력을 뺏은 대가로, 즉 법을 제대로 지키기 않거나 부당노동행위에 기초해서 얻은 것이고, 재능과 잠재력이 있는 젊은 영화인들에게 환멸과 좌절을 안겨준 대가로 얻는 것이었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봉준호의 성공은 덤핑 자본주의, 즉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몫을 주지 않고서 얻은 성공에 일대 경종을 울린다.

그런데 영화산업이니까 이게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의 187개 회원국 가운데 154개국이 비준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장’ 관련 협약 87조를 아직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이나 해직 노동자들, 공무원들이 노조를 결성하게 되면 한국 기업과 경제가 지탱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용인해야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런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아직 한국은 기술력이 아닌 임금비용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후발국인가?

세계 최일류 기업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조작을 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회계 장부와 주가를 조작해 투자자와 소비자를 속이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을 부당하게 산정해서 몸집을 키운 삼성이 세계 초초일류 기업이 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한국인들은 더 큰 자부심을 가질까? 시장 질서를 교란한 다음 얻어진 세계 일류의 그 뒤안길에는 누가 있을까? <기생충>의 스태프는 기껏해야 몇백명 정도이겠지만, 재벌의 범법 뒤에는 수십만명의 개미군단, 수백개의 하청 중소기업과 그곳에 고용된 수십만명의 종업원들과 알바생들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표준근로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영화계를 떠나겠지만, 재벌의 범법으로 경제 생태계가 망가지면, 수백 수천개의 혁신 중소기업이 죽고, 수십만명 미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삼성그룹 지배권을 넘기는 상속 작업은 20여년 전부터 편법·불법 논란을 불렀다.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삼성그룹 지배권을 넘기는 상속 작업은 20여년 전부터 편법·불법 논란을 불렀다.

법원, 정치권, 정부는 모두 초일류 한국기업을 더 밀어줘서 경제 살리자고 그들의 범법을 묵인하고, 언론은 한국의 반기업 정서가 너무 커서 경제가 어렵다고 매일 외친다.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응당 지급해야 할 임금과 휴식을 제공하지 않고, 하청기업한테 갑질을 해서 얻는 성공은 과연 지속가능한 성공인가? 그것은 불법 어망을 몰래 사용해서 치어까지 모두 잡아들여 얻어낸 어획고와 같은 것이 아닐까? 30만원짜리 구두 한켤레 만드는데, 제화 기술자들에게는 7천원의 노임만 주는 현실에서 누가 땀 흘려 일하려 할까?

규정과 상식과 법을 지키지 않더라도, 돈을 벌기만 하면 무조건 박수를 보낸다면, 그리고 정치권, 정부, 법원이 이런 졸부들의 경제력이 두려워 규정을 접는다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상식과 법을 지키다 패배한 대다수 국민들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법을 어겨야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는 얼마나 비루한가? ‘법의 집행’이 평등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한국인들이 12.5%에 불과하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는 한국이 ‘엉망진창 자본주의’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은 20년째 후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전환하는 계곡’에 갇혀 있다. 전 세계를 뒤흔드는 ‘방탄소년단’(BTS)을 자랑하는 한국 뒤에는 ‘표준근로계약’, 단결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업장에서 매년 80년 ‘광주사태’ 당시 학살당한 사람의 5배 이상이 사망하는 또 하나의 한국이 있다. ‘전환’은 신뢰와 사회통합을 전제로 하며, 줄 것을 주고 법과 규정을 지키고 돈을 벌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것이다. 2016~2017 촛불시위는 전환의 정언명령, 힘센 놈 밀어주어 잘살아 보자는 이명박, 박근혜 식 개발독재 논리에 대한 경고장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정치권, 정부, 법원이 여전히 ‘특수 사정’ 때문에 ‘국제 기준’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면 한국은 이 전환의 계곡에서 빠져나갈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말이 된다.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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