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난, 제4차 산업혁명도 한국 대학의 수직서열 구조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고, 학벌 지위 세습구조를 흔들지 않을 것이고, 최상위권 대학 진학을 향한 경쟁을 결코 없애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년보다 대학의 수직 서열은 심화되었고, 그것은 수도권 인구 집중과 중첩되었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가 대체로 소득 5분위 출신 학생들로 채워지는 교육 불평등이 더 심화되었다. 문 닫는 대학 뒤처리에 골몰하지 말고, 대학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위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
김동춘 ㅣ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학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교육과정 개편을 위해 국회에 ‘고등교육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을 내놨다.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한국 대학교육 개혁 필요성을 거론했다. 고등교육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약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대학 개혁과 학벌주의 타파의 칼을 꺼냈으나 결국 입시제도 변경이라는 용두사미로 끝났고, 문재인 정부는 칼조차 들지 않았다.
대졸자의 절반이 자기 전공을 살리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대학교육은 사회적 요구와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고, 일류대를 향한 과도한 경쟁은 온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 코로나 재난으로 비대면 강의가 일반화되자 ‘모든 대학이 사이버대학이 되었다’는 자조적인 말이 오가고 대학의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 코로나 재난이 아니더라도 10년 안에 지방과 수도권의 작은 대학들은 문을 닫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코로나 재난, 제4차 산업혁명도 한국 대학의 수직서열 구조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고, 학벌 지위 세습구조를 흔들지 않을 것이고, 최상위권 대학 진학을 향한 경쟁을 결코 없애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년간 대학의 수직 서열은 심화되었고, 그것은 수도권 인구 집중과 중첩되었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가 대체로 소득 5분위 출신 학생들로 채워지는 교육 불평등이 더 심화되었다. 수도권은 이제 ‘우수한’ 20~30대 청년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고, 기업들도 지방에서 좋은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수도권으로 더 몰려든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고등학교 교실붕괴, 청소년의 위험한 정신건강 등 초·중등 교육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문제는 입시와 연관되어 있고, 입시는 곧 대학 수직서열 구조의 지배를 받는다. 수직서열화는 수월성 촉진 교육이 아니라 거꾸로 대학과 학생의 실력 경쟁을 가로막는다. 모든 대학이 교육부나 언론기관의 대학평가에 목을 매달고 있지만, 그 평가는 10등이 9등 되는 정도의 변화밖에 없고, 입학 성적이 아니라 교육 투자에 의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대학이나 학생이 나왔다는 증거는 없다.
연구중심 대학 육성을 위한 두뇌한국21(BK21) 사업, 지방대학 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도 20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연구중심 대학이 과연 구축되었는가? 오히려 전국 학생 수의 2% 정도를 차지하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3개 대학 정부지원액수가 전체 고등교육 지원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정부는 일류대학 선호, 수도권 집중을 더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비공립대학에 이렇게 집중 자원을 투여했으니, 국가는 공교육을 어쩌자는 것인가?
고등교육 정책은 교육정책의 차원을 넘어선다. 서유럽 국가들이 대학교육을 무상화하고, 사립대학 위주의 미국도 한국보다 공립대학 수가 많고, 재정 지원도 많이 하는 이유는 대학교육이 국가의 인프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모든 일자리를 없애버린다는 주장도 의심스럽지만, 청소년의 능력 발휘 기회 보장, 불평등 완화, 학벌 지위 세습 차단, 국토의 균형발전 등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고, 그것을 위해 국가와 정치권은 교육문제를 민원 해결, 땜질 처방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고등교육의 80%를 사학에 의존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인재를 수도권 최상위의 사립대학에 맡겨놓은 현 고등교육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제조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상했기 때문에, 지방의 대학-기업 클러스터의 재구성의 관점에서 지방의 모든 국립대학을 무상화하여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취업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산업정책과 기술인력 육성에 대한 장기 비전에 따라 고숙련 기술자 양성을 위한 전문대학 학생 학비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학력별 임금격차 축소, 연공서열 대신 직무급제로 전환, 기술자 우대 정책을 펴서 대학 간판 수요를 더 줄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립대는 통폐합, 혹은 네트워크 구축을 해서 살길을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
코로나 재난은 질 낮은 한국의 대학교육 전반을 흔들 것이지만, 새 고등교육 체제는 외적 충격에 의해 자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수한 학생과 교수진이 지방의 거점 도시마다 산업 수요, 미래의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학습, 연구단위로 구축되어야 고등교육 생태계가 살아난다. 공정, 민주주의, 형평성, 합리적 경쟁 등의 모든 가치는 대학 수직서열 구조, 학벌 지위 세습구조와 양립할 수 없다. 문 닫는 대학 뒤처리에 골몰하지 말고, 대학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위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