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촉구 기자회견에서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참석자들이 관련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말 몇마디만 듣고도 그 사람 고향을 어림잡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게 꽤나 솔깃했던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발음으로 네 편 내 편 갈라 해코지를 한 사례들이 많다.
‘쉽볼렛 테스트’라는 유명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길르앗과 에브라임이라는 유다의 두 파벌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패전한 에브라임 사람들이 강을 건너 도망치는데, 길르앗 사람들이 길목을 막아서며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시킨다. 제대로 못 하고 ‘십볼렛’이라고 하면 잡아서 죽였다. 그 수가 4만2천명이었다. ‘쌀’을 ‘살’이라 하면 죽이는 격이다.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말로 ‘15엔 50전’(주고엔 고주센)이란 말을 시켜 제대로 못 하면 조선인이라 하여 바로 살해했다. 발음이 생사를 갈랐다.
나는 가끔 태극기집회에 간다. 그곳엔 어떠한 머뭇거림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추겼고, 확신에 찬 1만명은 마치 한 사람 같았다. 그 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다 빨갱이였다. 언어는 퇴보하고 있었다. 막힌 하수구처럼 다른 말은 흐르지 못했다. 고향을 알면 빨갱이인지 알 수 있단다.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나라를 망친 대통령은 빨갱이다. 북한에 돈을 제일 많이 갖다 바친 전임 대통령은 빨갱이다. 노란 리본 달고 다니는 놈들은 빨갱이다. 그래서 다 죽여야 한다. 빨갱이면 왜 죽여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먼저 죄인이라 불러놓고 죄목을 찾는다.
비통함이 없는 분노는 얼마나 위험한가. 망설임이 없는 적개심은 얼마나 맹목적인가. 거기, 나의 아버지들이 단어 하나를 부여잡고 막무가내로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