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동료들과 인권활동가들이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인권활동가들의 질문에 김용균씨의 동료는 “우리의 말에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다. 위험한 현장을 바꿔보려고 개선 방안을 냈지만 하청업체와 원청업체는 그 의견을 묵살했다. 국회도 찾아갔지만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그사이에 소중한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우리의 말에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는 그 과정에서 느꼈을 좌절과 울분이 담겨 있다.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고 나서야 세상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 결과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19년 5월27일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사 방해 관련 입장표명 기자회견’을 했다. 발전사들은 특별조사위원회 설문지에 설명자료 형식의 모범답안을 배포하고, 조사위원들이 현장조사를 하기 전에 물청소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한다. 공공연하게 배포된 설문지 모범답안에 따라, 안전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았다는 문항에 체크할 때 얼마나 불편했을까. 현장조사 며칠 전부터 물청소를 하며 매일 탄가루가 날리는 현장이 마치 안전한 것처럼 보여야 했던 하청노동자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조사위원들과의 문답 내용을 회사 관리자에게 써서 제출할 때 그는 또 얼마나 무력했을까. 발전사 조사 방해 행위의 진짜 문제는 하청노동자들에게 무기력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특별조사위원회는 대통령의 약속으로 만들어졌고, 국무총리 훈령으로 권한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발전사들은, 자신의 권리가 개선될 가능성을 비트는 일에 하청노동자를 동원함으로써,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 하청노동자들을 향해 ‘너희의 말은 힘을 가질 수 없다’고, ‘우리는 진실을 감출 수 있다’고 과시했다.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이 특별조사위원회 조사를 불신하여 조사에 충분히 협조하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했다. 특별조사위원회가 훌륭한 권고안을 내더라도, 노동자들이 무기력하면 그 권고안은 문서로만 남고 현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발전사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해 2400명이 일터에서 죽어간다. 정부가 일터에서의 죽음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고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되었지만 여전한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사업장의 담벼락은 너무 높아서 노동자들이 말하지 않는 이상 현장의 문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제도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없다면 죽음은 막을 수 없다. 권리가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많이 죽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권리, 위험 물질에 대해 알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자가 위험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개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말에 힘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말을 무기력하게 만들면 아무리 제도가 개선되어도 죽음은 계속된다. 발전사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은 달라졌다.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회사의 지시에 순응하지만 어떤 노동자들은 용기를 내어 현장의 문제를 증언한다. 그 용기 덕분에 발전사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를 방해한 행위도 드러났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사를 잠정 중단하고 정부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했다. 정부는 이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여겨야 한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애써 용기를 낸 하청노동자들이 좌절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용균씨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며 연대했던 시민들도 하청노동자들이 ‘말의 힘’을 믿고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도록 연대의 힘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래야 다른 노동자들도 용기를 내어 일터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