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널리 사용되었는데 어느 결엔가 사람들이 쓰지 않게 되면서 사라져 가는 말들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사쿠라’라는 말이 허다히 사용됐고 80년대만 해도 ‘다방’에 가면 ‘레지’라는 종업원들이 차 시중을 들었다. ‘북한’을 가리켜 보통 ‘북괴’라고 했다. 넘치도록 흔하게 쓰던 말들인데 이젠 마치 근대 이전의 어휘처럼 느껴진다.
교실에 아이들이 넘쳐나고 버스에는 승객들이 타져나갈 듯해서 교실과 버스 모두 ‘콩나물시루’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시장에는 ‘미제’와 ‘일제’ 물건이 더 인기가 많았고, ‘양키 물건’ 파는 아줌마들도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구호가 여기저기 휘날렸고 ‘전매청’ 직원들은 ‘양담배’ 단속을 다녔다.
일반적으로 어휘가 많을수록 좋은 일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돌이켜보니 그동안 사라져 간 어휘가 그리 아깝거나 아쉬운 말들이 아니다. 추억에 담아둘 만은 하지만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고달픈 단어들이었기 때문이다. 없어져 준 게 고맙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언어도 진화와 도태가 필요하다.
지금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먼 훗날 지긋지긋했던 말로 기억에 남을 것은 무엇이며, 없어져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될 어휘는 무엇일까? 아마도 갖가지 혐오 발언, 갑질 언어, 차별 언어, 막말과 독설, 그리고 각종 망언 등, 이러한 말들의 목록이 그 언젠가 지금의 시대를 평가하고 규정하는 도구가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말들 때문에 지금 이 시대가 되돌아보기 싫은 ‘어둠의 시대’로 낙인찍히지 말았으면 한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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