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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레벌루션 넘버 나인 - 9와 숫자들 / 신현준

등록 2019-02-08 17:30수정 2019-02-09 15:19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교수·역사비평가

서기, 그러니까 서력기원(西曆紀元)일 뿐인 네 개의 숫자가 한국인의 상징체계에서 왜 이렇게 중요하게 되었을까. 머리 아프니 그것까지 시시콜콜 따지지 말자. 이것도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일단 믿어버리자. 어쨌든 올해는 9로 끝난다. 힌두교를 비롯한 수비학(數祕學·numerology)에 따르면 9는 창조의 숫자, 신성한 숫자, 완성의 숫자, 심지어 우주 그 자체이다. 9로 끝나는 해에 기억 혹은 기념할 일도 많을 테니 계절을 따라 흘러가보자.

먼저 1919년 3월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기념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압도감이 적잖아서 이번 아니면 실기할 테니 제대로 방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기념식이 열리는 날은 북한과 미국의 2차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하루 뒤이니 잘하면 시너지 효과도 막강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자.

봄이 완연한 5월에는 이웃나라 중국에서 같은 해 일어난 운동의 100주년이다. 5·4운동이라고 불리는 혁명운동이 없었다면 현대 중국이 없었을 테니, 중국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재조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혹시나 ‘국민사’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나오기도 기대해본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서세동점의 굴욕을 딛고 중국은 실제로 30년 뒤 ‘신중국’을 건국했다. 역시 9로 끝나는 1949년의 일이다.

하지만 5·4가 있으면 6·4도 있다. 아직도 ‘사건’ 혹은 ‘사태’라고 불리는 1989년 베이징 천안문(톈안먼)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중국의 괜찮은 지식인들에게 물어봐도 복잡한 논리를 펼치다가 결국은 말끝을 흐린다. 1919년의 아름답고 젊은 운동가의 후예들이 1989년의 추잡하고 노회한 정치가로 전변한 사실은 너무나도 괴물 같아서 과감한 평가와 해석의 피안에 존재한다. 그러니 기념은 없다. 하지만 기억할 일이다.

1989년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전후로 가을과 겨울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입만 열면 혁명 운운하던 주체들이 혁명의 대상으로 전락해서 타도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혁명은 한국인들에게는 지리적으로 요원하고, 심리적으로 미묘해서 기념은 없을 것이고 기억도 흐릿해져간다. 그때쯤이면 ‘지긋지긋했던 2010년대를 보내고 희망찬 2020년대를 맞이하는’ 순간이 모든 것을 압도할 것이다.

그러니 기념과 기억은 봄이 지나고 가을이 오기 전에 마무리하는 게 좋다. 나를 포함한 같은 ‘록 아재’는 1969년 8월에 열린 ‘사랑과 평화의 3일’ 우드스톡 페스티벌, 그리고 그 직전인 7월에 발표한 존 레넌의 곡 ‘기브 피스 어 찬스’(Give Peace a Chance)의 50주년을 기념할 것이다. 오래전 일이라 진부하고 ‘서양문화사’라서 찜찜해도, 평화는 아무리 자주, 그리고 많이 기억해도 언제나 모자라고 부족하다. 그러고 보니 레넌은 ‘레벌루션 넘버 나인’넘버 나인 드림’ 등의 곡 제목에서 보듯 9라는 숫자를 진지하게 궁구했다.

혹시나 ‘평화의 향기’(the Scent of Peace)라는 향수를 판매하는 본드 넘버 나인(Bond No. 9)이라는 요물 같은 상품을 발견하고 시간의 변화와 시대의 신호를 감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평화와 상품을 연결하는 발칙한 시도에도 숫자 9가 필요했던 모양’이라고 관대하게 해석하자. 따라서 오늘의 결론 혹은 반전: 기억 혹은 기념하되 숫자들에 집착하거나 미혹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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