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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경식 칼럼] “아직 살아 있어!” - 어둠에 새기는 빛

등록 2019-01-03 18:31수정 2019-05-02 09:30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연말에 일정을 변통해서 규슈에 사흘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첫째 목적은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어둠에 새기는 빛―아시아 목판화운동 1930년대~2010년대’라는 전람회를 보는 것이었다. 첫날은 다가와시 미술관으로 갔다. 거기서 여성 화가 가미조 요코 등의 3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미조 씨는 1월에 가나가와현의 사가미하라 시민갤러리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의 화가를 지원하는 교류전’을 기획했는데, 전시기간 중인 1월20일 내가 얘기를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초빙한 가자의 화가들이 숱한 방해를 물리치고 무사히 올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예측 불허다.

미술관 옆에 있는 다가와시 석탄·역사박물관에도 안내를 받았다. 그곳은 옛 미쓰이탄광 유적지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야마모토 사쿠베에라는 탄광노동자가 극명하게 그려서 남긴 기록화가 보존돼 있고,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귀중한 자료도 전시돼 있었다. 바깥에는 광부들을 태우던 케이지(새장 모양의 철제 바구니)를 지하 수백 미터까지 내려보낸 망루가 보존돼 있다. 지하에 내려간 광부들은 거기서 사방팔방으로 뚫린 갱도를 더듬으며 위험한 중노동에 종사했던 것이다. 물론 거기서도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그 후예인 동포들이 지금도 거기에 살고 있다. 박물관 뒤 조금 높은 곳에 ‘한국인 징용공 위령비’가 서 있었다. 그곳 재일동포 유지들이 세운 듯하다.

케테 콜비츠 (1919~1920년)
케테 콜비츠 (1919~1920년)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은 번화가의 대형빌딩 7층에 있다. 주변을 단란해 보이는 커플이나 가족동반 여행객들이 오간다. 중국인이나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모습도 많다. 미술관의 넓은 전시실에 들어가니 목판화 특유의 칠흑 같은 화면 몇개가 눈앞에 펼쳐졌다. 제1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친숙한 케테 콜비츠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추도>(1919~1920년)가 눈에 들어왔다. 약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 뒤 독일혁명이 한창일 때 제작됐다. 나는 10대 무렵부터 책 삽화 등으로 콜비츠와 친숙했다. 나뿐만 아니라 1950~60년대에 일본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각인이었다. 그 뒤 일본은 두차례에 걸친 ‘안보투쟁’ 고양기를 거쳤다. 한편 1970년대의 한국은 유신독재체제 암흑기에 들어섰다. 예컨대 1975년의 제2차 인혁당사건 피고 8명 사형 집행 등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내 뇌리에 떠오른 것이 콜비츠의 작품이었다. 콜비츠에 의해 각인된 정경이 현실이 됐던 것이다.

리화 <짖어라! 중국>(<현대 판화> 제14집, 현대판화회(광저우), 1935년 12월=마치다시립국제판화미술관 소장
리화 <짖어라! 중국>(<현대 판화> 제14집, 현대판화회(광저우), 1935년 12월=마치다시립국제판화미술관 소장
제2전시실은 1930년대의 중국과 일본에 유럽의 목판화가 도입되고, 루쉰과 그를 도운 우치야마 서점의 사람들 같은 진보적인 일본인들의 기여로 중국의 해방운동과 엮이면서 융성기를 맞이한 사실을 보여준다. 리화 <짖어라! 중국>(<현대판화> 제14집, 현대판화회(광저우), 1935년 12월, 마치다 시립 국제판화미술관 소장)은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과 군벌·봉건제의 압정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인민의 모습 그 자체이며, 그것은 한때 일본,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기타 여러 민족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제3전시실은 1940~50년대의 일본, 제4전시실은 같은 시기의 벵골지방(<토지를 탈환하라>), 제5전시실은 1950~60년대의 인도네시아, 제6전시실은 같은 시기의 싱가포르, 제7전시실은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시대’, 제8전시실은 1970~80년대의 필리핀, 제9전시실은 1980~2000년대의 한국 민주화운동, 마지막 제10전시실은 2000년대 이후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돼 있다.

타링 파디는 <모든 채굴은 생활을 위협한다>, 2010년=후쿠오카시미술관 소장
타링 파디는 <모든 채굴은 생활을 위협한다>, 2010년=후쿠오카시미술관 소장

이 가운데 마지막 방의 인도네시아 작품을 소개해보겠다. 작자명 타링 파디는 1998년에 미술학생운동 속에서 태어난 활동집단의 호칭이다.(<모든 채굴은 생활을 위협한다>, 2010년) 엄청난 혼돈, 참으로 압도적인 밀도! 일본의 미술전문가 도쿠나가 리사는 그들의 집단예술이 특정 당파나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다양성’ ‘관용’ ‘반부패’ ‘노동자 권리’ 등을 테마로 현장에서 창출된다고 한다.

센다 우메지   제4호 도록(1953년 12월, 다가와시미술관 소장
센다 우메지 제4호 도록(1953년 12월, 다가와시미술관 소장
100년 전 독일에 원류를 둔 목판화운동의 수맥이 어떤 때는 거센 물줄기가 되고 또 어떤 때는 땅에 스며들기도 하면서 끊어지지 않고 아시아 각지의 민중운동 현장에 전파된 사실이 일목요연하다. 처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어느 것이나 내게는 어쩔 수 없이 그리움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다가와의 탄광 유적지에서 지하 수백 미터 갱도를 더듬다가 반세기도 더 지난 시간을 넘어 여기로 빠져나온 듯한 환상에 잠겼다.(센다 우메지 <제목 미상> <지하전선> 제4호 도록(1953년 12월, 다가와시미술관 소장)) 그 갱도는 내 상상 속에서, 현해탄 밑을 지나 한반도로 이어지고 다시 중국대륙으로, 동남아로, 인도로 뻗어 나간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의 가자까지. 자본가와 권력자들은 분명히 지상과 공중을 제 세상인 양 오가겠지만, 땀과 탄가루로 얼룩진 자들은 이 지하갱도를 왕래하면서 “어이, 살아 있는가?” “여기야. 살아 있어!”라고 서로 소리쳐 부르고 있는 것이다.

리화 ( 제14집, 현대판화회(광저우), 1935년 12월, 마치다 시립 국제판화미술관 소장)
리화 ( 제14집, 현대판화회(광저우), 1935년 12월, 마치다 시립 국제판화미술관 소장)
미즈사와 쓰토무의 지적대로, “1999년 개관 이래 관련 작품이나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조사해온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의 연구활동 축적이 없었다면 본 전시회는 실현될 수 없었다.”(전시도록) 미술관 운영부장 구로다 라이지의 에세이 ‘아시아의 목판화운동―민중적 미디어를 통한 근대화의 계보’는 이 분야에서는 드문 필독의 역작이다. 구로다는 아시아 근대미술사를 볼 때 종래와 같은 서양발 일본 경유의 ‘수직적 강하’가 아니라 아시아 내부의 ‘수평적 교류’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시아 미술 ‘근대화’를 ‘주체화’의 프로세스로서 목판화의 관점에서 파악할 것을 제창한다.

구로다가 말하는 목판화운동이란 “미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람회’ 이외의 수단으로 광범한 관중에게 보여주는, 제작과 보급이 일체화된 미술가의 자발적·자립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목판화에서는 손가락이나 팔의 힘으로 단단한 물질을 (칼로) 새기고, 그 판을 먹으로 인쇄하면, 힘의 흔적이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고뇌를 통한 환희’를 가져다주는 목판화의 특성이 아마추어를 포함한 창작자=주체의 물질에 대한, 사회 상황에 대한, 나아가 권력에 대한 저항을 통해 온갖 억압과 질곡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정치·사회 투쟁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이런 구로다의 서술 자체가 일본 미술계의 주류에서 동떨어진 이 전람회의 콘셉트와 같은 반시대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해방운동의 열기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인 일본에서는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람회는 땅밑은 지금도 지열로 충만하다는 것, 그것이 어느 때고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치솟아 오르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전람회를 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소멸한 것으로 생각하는 ‘무언가’가 어둠 깊숙이 저쪽에서 “아직 살아 있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전람회장을 나올 때 40살 안팎으로 보이는 10여명의 한국인 여성 그룹이 즐거운 듯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광경과 마주쳤다. 그들이 이 미술관에서 예전에 자국에서 전개된 민중미술운동의 대표작들을 어떻게 봤을지 궁금했다. 그 이상으로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민중운동 작품(圖像)들을 어떻게 봤을지 알고 싶었다. “아직 살아 있어!”라는 소리는 그들의 귀에 들렸을까.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그들의 환한 웃음소리에 기가 눌려 실행하진 못했다. 문밖으로 나오니 주변은 완전히 밤의 장막에 덮여 있었고 차가운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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