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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순택, 장면의 그늘] 듣는 이 없는 자들의 비명

등록 2018-12-20 18:09수정 2018-12-20 19:28

노순택
사진사

어둠 속에서 조용히 우는 사람들을 보았다. 겪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그를 울게 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짓누르는 갑갑함에 울었다. 지금 겪는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흐르는 눈물이었다. 무대에 막이 내려왔다. 객석이 환해지고서야 서로는 표정을 다잡았다. 깊은 밤, 겨울의 문턱. 친구들과 나는 무대 위에 펼쳐진 (현란한 연극이 아니라) 심란한 현실을 보았다.

극단 고래의 연극 <비명자들>엔 제목 그대로 비명 지르는 사람들이 나온다. 가상의 미래, 도처에서 정체불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이 출몰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들이 지르는 비명은 반경 4㎞ 안 사람들의 뇌와 고막을 뒤흔든다. 사람들은 비명자를 제거하려 갖은 폭력을 동원하지만 더 큰 화를 입는다. 비명자의 무서움은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데 있었다. 누군가 몽둥이를 휘둘러 비명자를 때리면 반경 속 모두에게 같은 고통이 가해지는 식이다. 결국 국가가 나선다. 국가는 발생 원인을 찾고 예방책을 세우기보다는 비명자 제거에만 골몰한다. 정치인들은 부유층에게 피해가 없도록 각별히 신경 쓴다. 국가는 번번이 실패하나 결국 답을 찾는다. 사람을 죽이는 데 사람만 한 무기가 없는 법이다. 비밀연구소가 세워지고 인간병기가 양성된다. 이들은 고통에 무감하도록 훈련받는다. 리더 ‘요한’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비명자의 목을 꺾어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비명자의 고통을 마주 본다. 사연을 들어주는 유언청취인이 된다. 누군가 귀담아듣자, 비명은 비로소 말이 되어 들리기 시작한다.

파출부 일을 하던 엄마는 맞벌이하지 않고 두 아이를 키울 재간이 없었다. 네다섯살 녀석들이 행여 밖에 나가 길을 잃을까봐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갔다. 지하실 셋방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발견한 건 집주인이었다. 세상은 자식 잃은 어미아비의 심경을 헤아리기보다 미련함을 손가락질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엄마의 말은 비명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집단 따돌림에 성폭행마저 당했던 여학생의 호소를 들어주는 어른은 없었다. 점잖은 충고와 행실을 바로 하라는 꾸지람 사이에서 헤매다가 결국 뛰어내렸다. 눈 뜨고 보니 말이 비명이 되어 있었다. 공장 옥상에서 솥뚜껑을 들고 경찰특공대에 맞섰던 해고노동자는 갈 데가 없었다. 감옥을 다녀온 그에게 아무도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로 퇴직금은 가압류당했다. 살려고 아등바등하던 그에게 들려온 건 끊임없는 동료들의 부고였다. 누군가는 관 속에서, 누군가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누군가는 현기증 나는 굴뚝 위에서 비명자가 되어갔다. 차가운 봄 바다에 가라앉은 목숨들과 죽지 못해 사는 가족들의 비명은 어떠했나.

연극이 끝나자 친구들은 한숨처럼 말했다. 이건 연극이 아니네, 우리 이야기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네. 대본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른바 당사자였다.

‘이명박근혜’의 계절엔 이런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들은 ‘허락받은 예술’을 원했고, 거절한 예술가에게 빨갱이 껍데기를 씌워 검은 명단을 작성했다. 그 시대가 끝나고, 불편한 얘기마저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은 달라졌는가.

지금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위에 두 명의 노동자가 매달려 있다. 20일로 404일. 없는 약속 아닌, 맺은 약속을 지키라는데 스타플렉스(파인텍의 모기업) 김세권 사장은 대답이 없다. 누군가 죽어야 하나, 더 죽어야 하나. 그렇게 죽여야 하나, 그렇게 더 죽여야 하나. 그래선 안 되겠기에 한겨울 오체투지가 감행됐다. 청와대와 국회를 가로질러 회사와 굴뚝까지 닷새를 신음하며 기었다. 울면서 기었다. 회사는 요지부동이었고, 경찰은 출입문을 가로막았다. 현실의 비명자들에겐 아무런 괴력이 없었다.

목숨을 내놓고 외치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더 많은 목숨을 내놓는 수밖에 없는가. 지금 스타플렉스와 굴뚝 아래에선 한겨울 무기한 단식이 벌어지고 있다. 굴뚝에 몸을 묶은 홍기탁 박준호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다섯 노동자를 지키기 위한 사생결단 연대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몸이 무너진다. 그렇게 삶이 망가진다. 얼마나 더 삶을 망가뜨려야 삶을 지킬 수 있는가. 비명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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