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사진사
전쟁은 적을 향해 돌진하는 일이며, 물리력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력의 동원만으로 수행되지 않는다. 방향 또한 적을 향한 것만이 아니다.
심리전의 역사는 오래됐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병법의 충고는 앎의 방향이 ‘적과 아’ 모두를 향할 것이며, 그 앎 또한 물리적 파악에 머물지 말고 심리적 파악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어떠한가. 여기서 싸우지 아니함이란, 정말 싸우지 말라는 의미일까. 몸 대신 머리로 싸워 적의 마음을 무너뜨리라는 뜻이다. 중국 초나라 항우의 군대가 한나라 군사에 포위되었을 때 밤마다 들려오는 고향의 노래는 초나라 병사들을 좌절시켰다. ‘사면초가’의 위력은 칼보다 셌다. 인류가 전쟁을 거듭할수록 심리전은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육군부의 페이스 장관은 “적을 삐라에 파묻어 버려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 발발 사흘 만인 6월28일 미군은 1200여만장의 삐라를 살포했다. 남한군을 응원하고 주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내부용’이었다. 이어 7월17일에 80여만장의 삐라를 북한 지역에 살포했다. 1953년 휴전 때까지 미군이 뿌린 삐라는 660여종 25억장에 이른다. 북한도 360여종 3억장가량의 삐라를 날렸다. 하나의 삐라를 엽서 크기로 계산했을 때 한반도를 스무번 덮을 양이며, 한줄로 이으면 지구를 몇 바퀴 감을 수 있는 양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뿌려진 80억장보다 적다지만, 단위면적당 살포량은 따라올 전쟁이 없다.
정전 이후 반세기가 넘는 적대관계 속에서 남북한이 서로에게 날려 보낸 ‘종이폭탄’이 대체 몇 장이나 될지는 알 수 없다. 2000년 6·15 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상호 비방을 멈추자”고 합의하면서 비로소 삐라 살포는 멈췄다. 하나 그로부터 8년 뒤 삐라 살포는 재개되었다. 북녘의 삐라작전이 여전히 국가주도형이라면, 남녘에선 언제부턴가 반공단체가 주도하는 민간형이 되었다. 남에서 북으로 날아가는 저주의 말폭탄 속에는 미끼용 달러와 드라마 유에스비(USB), 음악 시디(CD)가 섞여 있다.
총과 포탄이 서로의 몸뚱어리를 겨냥한다면, 삐라는 마음을 겨냥한다. 그래서 덜 무섭지만, 그래서 더 무섭다.
지금까지 삐라는 눈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제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댓글삐라’가 모니터 위로 쏟아져 내리는 시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삐라는, 적군용인 동시에 아군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