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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일본식 외래어 / 김하수

등록 2018-11-11 17:58수정 2018-11-12 11:58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외래어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국제 교류를 정상적으로 하는 사회치고 외래어가 없는 곳을 찾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어떤 외래어를 선호하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관심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기 높은 외래어인 영어는 새로운 분야, 새로운 상품이나 문물, 혹은 풍조를 표현하는 데 많이 쓰인다. 곧 세속에서 영어는 늘 새로운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종종 ‘사이비 새로움’도 있기는 하다. 이와 달리 일본어나 일본식 발음 외래어의 느낌은 또 다르다. 오랫동안 일본어를 꺼려온 탓인지 일본어 단어를 들으면 비공식적인 것, 곧 질서를 벗어난 표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일본식 외래어에는 ‘후리타, 오타쿠, 무데뽀, 노가다, 야마, 곤조’같이 공식 세계에서 벗어난 변두리 세계의 의미 영역을 가리키는 어휘가 분명히 더 많다. 이는 일본어에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일본어를 거부하면서 덧씌워진 부작용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 보니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나 일본식 발음으로 표현되는 외래어는 무언가 통속화된 것, 비공식적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더 나아가 의식적인 비속화 기능도 적지 않게 드러낸다. 스스로를 거칠고, 공공 영역 바깥의 ‘저렴한 분위기’를 만드는 기능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유명인사가 거르지 않고 내뱉은 ‘야지’라든지 ‘겐세이’ 같은 외래어 사용에 대한 비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일본어만을 탓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도 물론 문제이지만 굳이 일본식 외래어를 불필요한 곳에서 사용하여 스스로 여차하면 대화의 격을 비공식적 판으로 떨어뜨리겠다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들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마찬가지로 거칠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말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의 장을 거칠게 한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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