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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순택, 장면의 그늘] 언 가슴에 오줌 누기

등록 2018-10-25 18:25수정 2018-10-26 13:48

‘아직까지’ 네 명이 남아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11년을 훌쩍 넘어 4300일이 코앞이다. 사십대 후반 검은 머리가 환갑 앞둔 흰머리가 됐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가장 길고 처절한 몸부림이다. 언제까지 싸워야 한단 말인가.
노순택
사진사

콜트악기회사의 박영호 사장은 만난 적이 없는데도 어쩐지 친숙하다. 악행에 대해 누누이 들은 탓일까. 노동자에게 참 인색한 사장이었다. 분진과 유해가스로 가득한 공장 안 노동자에게 천마스크를 주고 더러워지면 빨아서 다시 쓰게 했다. 분진을 거르기보다 입과 코를 덮는 용도였다. 작업용 장갑도 마찬가지였다.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지만, 박영호의 공장에서 징글맞게 알뜰한 재활용은 거역할 수 없는 의무였다. “창을 내면 노동자들이 밖을 보며 ‘딴생각’에 빠질까봐 공장에 창문을 내지 않았다”는 증언은 괴이하고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선행에 대해서도 누차 들었다. 악기공장 사장답게 음악을 사랑하는 이였다. 공장 안에 작은 공연장을 만들 정도였다. 음악가들을 한데 모으는 큰 공연을 기획하고 후원하는 데도 앞장섰다.

성수동에서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해 세계 기타 시장의 3할을 차지하는 굴지의 기업이 됐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신화인가. 기술력을 인정받아 깁슨, 펜더, 아이바네즈 등 이름 대면 알 만한 명품 기타 회사가 주문을 이어갔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명품 기타를 만든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긍지를 가졌다. 자긍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 사장은 돈에 밝았다. 세계는 값비싼 기타를 팔 수 있는 시장일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보다 값싼 임금을 쉽게 살 수 있는 시장이기도 했다. 재빠르게 인천과 대전 공장 문을 닫고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지었다.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은 저항했다. 모질게 발악했으나 소용없었다. 힘겨운 복직투쟁에 많은 이들이 떠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네 명이 남아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11년을 훌쩍 넘어 4300일이 코앞이다. 사십대 후반 검은 머리가 환갑 앞둔 흰머리가 됐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가장 길고 처절한 몸부림이다. 아직까지는 싸워왔으나, 언제까지 싸워야 한단 말인가.

해고노동자들과 연대작업을 이어왔던 친구들과 인도네시아 공장을 찾아가자는 꿍꿍이를 모의할 때만 해도 나는 반신반의했다. 말이 쉽지 정말 가게 될지, 가서 뭘 해야 할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간극이 얼마일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림·사진·영화쟁이 여섯이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인도네시아 수라바야로, 다시 차를 타고 모조케르토 공단으로 향했다.

이따금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대한 화산 아래 박 사장의 ‘꿈의 공장’이 있었다. 주문자생산방식 브랜드별로 예닐곱개의 공장이 각자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유기용제가 뿜어내는 매캐한 악취가 코와 폐를 찔렀다. ‘임재춘 형이 마치 그립다는 듯 말하던 냄새가 이거구나.’ 드나드는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썼으나 하나같이 얇았다. 우리는 공장 앞을 배회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고, 그림 그리고, 설치물을 만들고,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길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노동자들과 계단에 앉아 일회용 커피를 나누며 얘기 나눴다. 방종운이 여기에 왔다면, 김경봉과 임재춘과 이인근이 여기에 왔다면 어떤 심경일까. 사측은 경계했으나 물리적으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박 사장의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폐공장에 숨어들어가 기타 들고 어둡게 노래하는 해고노동자들의 사진을 벽에 붙였다. 기타 치며 밝게 웃는 박 사장의 사진도 붙였다. 깊은 밤, 나는 그의 발에 오줌을 갈겼다.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부질없을지라도, 차갑게 얼어붙은 박 사장의 가슴에 한 줄기 체온을 전하고 싶었다.

하려던 짓을 다 하고도 우리는 무사히 돌아왔다. 몹쓸 짓을 하고도 박 사장의 공장은 무사히 돌아간다. 해고노동자 넷은 오늘도 무사히 초겨울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왜 오줌을 누어도 언 발은 녹지 않을까. 오줌 탓인가, 언 발 탓인가, 날씨 탓인가. 혹시, 당신 탓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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