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외교관과 외국어 / 김하수

등록 2018-09-16 17:57수정 2018-09-16 19:23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외교부에서 외교관들의 영어 능력을 걱정한다는 말이 놀랍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또 다른 소식 때문이다. 많은 국외 근무 공무원이 현지인과의 교류에 집중하기보다는 국내에서 오는 고위층의 의전과 접대에 무척 시달린다는 소문 말이다.

외국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오랜만에 출국하면 적어도 며칠은 혀가 굳어버리는 일을 자주 겪는다. 그만큼 외국어는 ‘일상화’되었을 때 윤이 난다. 하루라도 잡무에 정신을 팔고 나면 그만큼 현지어의 능숙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국내 인사의 관광 안내에나 내몰리고 나면 어느 겨를에 현지 언어 수련을 제대로 해내겠는가.

우리가 길러낸 외교공무원은 그저 그런 시험으로 뽑힌 잔심부름꾼이 아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또 진짜 고급스러운 외국어 능력은 어휘력이나 멋진 발음만이 아니라 풍부한 ‘교양’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능한 외교관은 교섭 능력 못지않게 현지 여론을 주도하는 교양 계층을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양은 스스로를 그 사회와 문화 속에 푹 담가서 숙성시켜야 겨우 제 노릇을 할 수 있다. 그제야 우리의 이익을 지켜줄 ‘소통망’에 접선된다.

이제는 산업 부문만이 4차 혁명을 맞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소통 능력과 방식도 또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그저 그런 평범한 외국어 능력은 곧 인공지능이 대리해줄 것이다. 더 풍부한 ‘수사법’, 만민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감 능력’, 이방인들과의 깊은 ‘유대감’ 등이 소통의 수준과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껏 길러놓은 전문가들의 능력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 없이 평소부터 잡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연마를 하게 했으면 한다. 우리의 전문가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