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외교부에서 외교관들의 영어 능력을 걱정한다는 말이 놀랍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또 다른 소식 때문이다. 많은 국외 근무 공무원이 현지인과의 교류에 집중하기보다는 국내에서 오는 고위층의 의전과 접대에 무척 시달린다는 소문 말이다. 외국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오랜만에 출국하면 적어도 며칠은 혀가 굳어버리는 일을 자주 겪는다. 그만큼 외국어는 ‘일상화’되었을 때 윤이 난다. 하루라도 잡무에 정신을 팔고 나면 그만큼 현지어의 능숙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국내 인사의 관광 안내에나 내몰리고 나면 어느 겨를에 현지 언어 수련을 제대로 해내겠는가. 우리가 길러낸 외교공무원은 그저 그런 시험으로 뽑힌 잔심부름꾼이 아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또 진짜 고급스러운 외국어 능력은 어휘력이나 멋진 발음만이 아니라 풍부한 ‘교양’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능한 외교관은 교섭 능력 못지않게 현지 여론을 주도하는 교양 계층을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양은 스스로를 그 사회와 문화 속에 푹 담가서 숙성시켜야 겨우 제 노릇을 할 수 있다. 그제야 우리의 이익을 지켜줄 ‘소통망’에 접선된다. 이제는 산업 부문만이 4차 혁명을 맞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소통 능력과 방식도 또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그저 그런 평범한 외국어 능력은 곧 인공지능이 대리해줄 것이다. 더 풍부한 ‘수사법’, 만민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감 능력’, 이방인들과의 깊은 ‘유대감’ 등이 소통의 수준과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껏 길러놓은 전문가들의 능력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 없이 평소부터 잡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연마를 하게 했으면 한다. 우리의 전문가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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