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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깨알 글씨 / 김하수

등록 2018-09-02 17:37수정 2018-09-03 14:28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시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둥, 시장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시장이 이렇게 막강하게 영향력을 자랑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에 내재한 ‘합리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장의 비정함을 소리 높여 외쳐보아도 시장은 보편적인 ‘이익’의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정직한 태도를 가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합리성은 판매자에게나 고객에게나 동일한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전제가 흔들리면 그 시장은 곧 시장 바깥의 정치적 권력에 의해 역공을 당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시장의 합리성은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시장은 ‘공정한 거래’에 의해 지배되어야 그 합리적 지배의 정당성을 보장받게 된다. 종종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부자유스러운 규제를 만들기도 한다.

공정한 시장을 위하여 생산자는 상품에 대한 정직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공정한 어휘’와 ‘올바른 맞춤법’이 사용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시장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즘의 몇가지 문제는 문법이나 맞춤법의 문제가 아니라 글씨의 크기에서도 나오고 있다. 돋보기를 써도 알아볼까 말까 한 작은 글자로 상품의 사용법이나 성분, 주의 사항, 생산 날짜, 유효 기간 등을 적어놓았으니 어느 한가한 소비자가 ‘합리적 시장’을 위하여 돋보기를 꺼내 들겠는가?

고객들에게 당연히 제시해야 하는 중요 정보 사항을 이렇게 깨알 같은 크기로 적어놓는 것은 사실상 상품 정보를 차단하는 행위이다. 일종의 불공정 상행위인 것이다. 진정 시장의 합리성을 완성시키고자 한다면 이대로는 곤란하다. 앞으로 ‘중요 정보’로 판단되는 내용들은 반드시 어느 정도의 크기 이상으로 표기하도록 하는 법률적인 강제도 있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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