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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찬, 세상의 저녁] 베를린, 판문점, 싱가포르의 역사성

등록 2018-06-21 18:08수정 2018-06-22 10:18

1970년 첫 정상회담 이후 89년까지 8차례 공식·비공식 회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서독의 일관성 있는 정책의 결과였다. “통일이 요구하는 것은 지루하고 끝이 없는 대화”라는 브란트의 토로야말로 서독 통일정책의 핵심이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지루하고 끝이 없는 대화’를 통해 축적된 에너지였다.
정찬
소설가

지난 3월 초 미국외교협회는 한반도의 전쟁 발발 확률이 50%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된 4월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고, 6월12일에는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 판문점 선언 재확인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내용으로 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1948년 한반도 분단 이후의 북-미 관계를 비추어보면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다. 선대와 확연히 다른 통치 스타일을 보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군산복합체와 연계된 워싱턴 정치의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트럼프 대통령, 한반도의 운명을 간절함과 냉철함으로 응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조한 역사의 정교한 태피스트리가 북-미 정상회담이다. 20세기의 파괴적 유산인 냉전체제에 묶여 두 날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한반도에 마침내 비상의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잔인함의 규모에서 20세기만큼 참혹한 시대가 없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일어난 식민지 전쟁과 내전 등으로 점령과 파괴, 저항과 대량학살로 점철되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전쟁은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렇게 좁은 영토에서, 이처럼 집중적으로 많은 인명이 손실된 전쟁은 근대 이후 거의 없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참혹했다.

인명 피해는 사망과 실종, 부상을 포함해서 500만명에 달했고, 거듭되는 전세의 반전 속에서 상호 보복의 학살이 한반도 도처에서 행해졌다. 미군의 무차별 공습은 참혹을 가중시켰다. 당시 미국 태평양 지역사령관 르메이는 “미 공군의 융단폭격으로 북한은 석기시대로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전쟁의 참상에 책임이 큰 남과 북의 정권이 휴전 이후 오히려 강력한 권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반공과 반미라는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층 강화된 냉전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린 것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였다. 그해 6월 서독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는 “베를린 장벽이 만들어진 조건이 사라지면 장벽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이란 냉전체제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냉전체제가 무너졌음을 뜻했다. 이 문명사적 전환은 강고한 분단구조 속에 갇혀 있는 한반도에 새로운 인식의 틀을 요구했고, 그것의 첫번째 과제가 반공과 반미라는 증오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피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1차 남북 정상회담 3개월 전인 2000년 3월 독일을 방문하여 발표한 ‘베를린 선언’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하면서 “동서독 관계와 통일의 경험은 대북정책 추진에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독의 통일정책은 글자 그대로 실재적이었다. 서독은 동독이 안고 있는 문제가 장래 통일독일이 안아야 할 문제라는 입장에서 통일정책을 세워나갔다. 이 입장이 요구하는 인식은 동서독의 차이가 가능한 한 좁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독이 동독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여 동독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정치·경제적 자유의 신장을 촉진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동서독 상호방문이 시작된 것은 1964년 10월이었다. 처음에는 서베를린 시민의 동베를린 거주 친척 방문과 동독 정부 연금수혜자의 서독 방문 허용 등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1969년 브란트 서독 총리가 과감한 동방정책을 추진해 동서독 관계를 급진전시켰다. 1970년 3월 동서독 총리의 첫 정상회담 이후 89년까지 8차례 공식·비공식 회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서독의 일관성 있는 정책의 결과였다. “통일이 요구하는 것은 지루하고 끝이 없는 대화”라는 브란트의 토로야말로 서독 통일정책의 핵심이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지루하고 끝이 없는 대화’를 통해 축적된 에너지였다.

70년 만에 이루어진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며 “숱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이 담대한 여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에게 밝혔다. 국민은 6·13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길로 향하는 문재인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판문점과 싱가포르 회담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의 씨앗이 발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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