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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덕담 / 김하수

등록 2018-06-17 20:42수정 2018-06-17 20:51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남에게서 덕담을 들으면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덕담은 외교적이고 사교적인 대화에서 쓰이는 말이다.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거나 대화 상대방과 매끄러운 관계를 다듬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회 활동의 윤활유인 셈이다.

덕담이 성립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상대방의 소망, 욕망, 목표에 부합하는 덕담을 해야 한다. 당사자가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나 꺼림칙해하는 분야에서 성공하라고 말해서는 덕담이라고 하기 어렵다. 기업인한테는 사업의 성공을 빌고 정치가에게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를 축원해주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덕담이다.

그다음 조건으로, 덕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덕담은 약간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경우에 따라 약간의 과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한이나 영향력이 필요한 내용은 덕담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정당성의 문제가 생긴다.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인사 대상에게 “이번 기회에 꼭 진급하세요”라고 말했다면 그 누가 그것을 덕담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아마 누구든지 ‘거래 의사’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법원장이란 사법부의 수장이다. 견제해야 할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에게 ‘재판’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덕담이라고 했다는 것은 분명히 ‘언어 오용’이다. 더구나 행정부가 관심을 가지는 사항을 곁들여 ‘판결’에 관한 언급을 한 것은 누가 보든지 미끼를 던진 것이고 ‘거래’를 위한 바람잡이 구실을 한 것이다. 덕담의 조건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법관은 ‘법률의 언어’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다듬어주는 전문가이다. 그들이 언어를 오용했다는 것은 법을 오용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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