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싸웠던 이들만이 협상 끝에 집단이주했다. 그때 농부들이 간절하게 원했고 정부가 확답했던 게 ‘대추리’라는 이름이었다. 이름만큼은 빼앗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12년이 흘렀다. 폭삭 늙은 농부들이 청와대 앞에서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원망하며 눈물을 쏟는다.
사진사 ‘약속’이란 낱말에선, 숭고의 냄새가 난다.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지키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그 뒤에 숨쉬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약속은 무겁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아니라 네 기다림의 무게 때문에. 약속은 무섭다. 내가 잊어도 너는 잊지 않을 수 있기에. 물론 세상에는 오만가지 약속이 있고, 이를 둘러싼 십만가지 경우가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분통 터지는 정치가 있는가 하면, 지킬까봐 겁나는 정치가 있듯이. 10여년 전, 평택 대추리를 오가며 작업하던 나는 어쩌다 마을 주민들 초상 찍는 일을 떠맡게 됐다. 들녘에서 일하던 개똥이 할배를 슬쩍 찍고, 머리띠를 두른 채 미군기지 철조망 앞에서 악쓰는 소똥이 할매 얼굴에 사진기를 들이대던 짓과는 사뭇 다른 일이었다. 쉽지 않았다. 그것은 아흔을 바라보는 조선례 할머니의 서리 맺힌 이야기를 듣는 일이자, 방승률 할아버지의 얼굴을 찍다가 무심코 당신의 잘린 손가락을 바라보는 일이었으며, 들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아이가 수로에 빠져 죽은 줄도 몰랐다는 한승철 형님 부부의 맺힌 한을 짐작하는 일이기도 했다. 알게 된 약을 먹은 탓인지, 알게 된 병을 얻은 탓인지, 초상난 마을에서 초상 사진을 찍은 업보였는지 ‘오가던’ 대추리는 어느새 ‘내가 사는’ 대추리가 되었다. 정부의 협박과 이간질 속에 늘어가는 빈집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지킴이’란 이름으로 기꺼이 마을 주민이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저녁마다 대추분교 운동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질긴 놈이 이긴다! 올해도 농사짓자!” 외쳤던 기억을 누구인들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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