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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마실 외교 / 김하수

등록 2018-06-03 19:29수정 2018-06-03 19:33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한때 남과 북의 외교는 유엔에서 지지 국가 수를 늘리는 경쟁에 매몰되기도 했다. 또 강대국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 동족끼리 손가락질하는 유치한 입씨름을 벌인 경우도 많았다. 올해 들어 벌어진 남과 북의 외교 활동은 시대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손발 맞춰 처리해 나간 적이 언제였던가?

미국 방문 1박4일, 순식간의 판문점 나들이, 이런 식으로 시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숨 가쁜 활동을 언론에서는 ‘셔틀외교’라고 했다. 왕복외교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마치 별생각 없이 왔다 갔다만 하는 심부름꾼이라는 느낌을 준다. 또 청소년 사이에서 사용되는 좋지 않은 통속어 가운데도 ‘셔틀’이란 말이 있어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통속어 ‘셔틀’은 힘이 약한 아이한테 궂은 심부름을 뒤집어씌우는 짓을 말한다. ‘담배 셔틀, 빵 셔틀, 가방 셔틀’ 등 약자를 괴롭히는 못된 짓들을 가리킨다. 이런 ‘셔틀’이란 말보다는 다른 좋은 말을 찾아보는 것이 낫겠다.

오래된 마을에서는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사교 활동’을 하는 것을 ‘마실 다닌다’고 한다. 그러면서 먹을 것을 나누기도 하고 집집이 돌아가는 여러 가지 사연과 곡절을 귀동냥하며 ‘공동체’적인 소통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웃집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뻔히 알게 되며, 이런 소통과 정보를 바탕으로 마을의 협업과 보살핌이 이루어진다. 따지고 보면 국가 간의 외교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외교를 하면서 아슬아슬한 ‘벼랑 끝 외교’나 불안한 ‘말폭탄 외교’를 일삼는 것도 소모적인 짓이다. 그런가 하면 그저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거창한 국빈 외교도 얼마나 허망했던가? 이제는 더욱 실속 있는 마실 외교를 통해 국가 간의 소통을 유지하며 서로 이익을 나누는 품격 있는 국제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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