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사진사
회장님, 그날 나는 당신 사진의 목을 꿰맸습니다. 2016년 모진 겨울, 한국 사회를 똥통에 처넣은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며 친구들과 광장 노숙을 힘겹게 이어가던 때였습니다. 시작은 파렴치한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예술가들의 초라한 몸부림이었지요. 하지만 이내 친구들이 불어났습니다. 이미 오래도록 싸늘한 거리와 위태로운 굴뚝 위에서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짐승 아닌 인간의 노동을 하고 싶다”고 외쳐왔던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블랙리스트는 예술가의 숨통만 죈 것이 아니더군요. 이미 일터에선 헌법이 규정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했다는 ‘전력’만으로도 광범위하고 악질적인 블랙리스트가 회사들끼리 공유되며 생존권이 ‘차단’되고 있었습니다. “검은 명단의 끔찍함과 집요함이라면 노동자가 더 잘 안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더군요.
우리는 노숙투쟁을 함께 하며 광장 한편에 천막으로 엮은 미술관을 만들었습니다. ‘궁핍현대미술광장’이라 이름 지었죠. 현대가 후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닙니다. 국립이 외면한 궁핍한 사람들의 이야기, ‘관’이 넘어뜨린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려는 ‘광장’의 이야기를 담고자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나는 개관전시에 삼성 이재용과 현대 정몽구를 초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관람객이 아니라 작품으로요.
2012년 박근혜 당선자가 등장한 <타임> 표지를 기억하시는지요. 그래픽디자이너 민성훈은 박근혜 가면 뒤 최순실을 폭로하는 패러디 작업을 한 바 있습니다. 그걸 본 노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죠. “최순실 가면 뒤에 숨은 이재용과 정몽구를 폭로해야 한다”고요. 그리해 우리는 당신들이 등장하는 2016년 12월판 <타임> 표지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커다란 천에 인쇄해 전시장 외벽에 걸었죠. 하지만 개관일을 앞둔 새벽, 누군가 예리한 칼로 작품을 난도질했습니다. 아찔하더군요. 공교롭게도 이재용과 당신 사진은 목마저 잘렸습니다. 끔찍하더군요.
우리는 새로 만들지 않고 꿰매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궁핍현대미술광장이었으니까요.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홍종인,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유흥희, 인권운동가 명숙과 나는 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당신 사진의 잘린 목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온 사회가 촛불을 들고 대통령 퇴진을 외치지만, 진짜는 정몽구라고. 박근혜를 멈추게 해도 정몽구를 멈춰 세우지 않으면 우리 삶은 계속 파괴될 거라고. 모가지 잘려나간 노동자들이 당신 모가지를 이어붙이며 되뇌었던 쓰디쓴 토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겨울의 끝 박근혜는 멈췄습니다. 당신을 비롯한 한국 경제의 거목들이 꼭두각시와 주고받은 검은 뒷거래가 폭로될 때, 당신은 멈칫했겠지요. 용역깡패를 앞세워 잔인하게 노동자를 짓밟았던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이 법정 구속될 때는 뜨끔했을 겁니다. 그 부품제조사한테 노조파괴를 집요하게 사주했던 게 바로 현대차였으니까요. 스스로 목숨 끊은 동료 한광호의 깨진 영정을 품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울음을 삼키며 끝내 현대차 사옥 앞으로 향했던 이유입니다. 악랄한 노조파괴를 겪은 유성기업 노동자 절반가량이 고위험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오월의 봄입니다. 설마 5·18을 모른다 하지 않겠지요. 1980년 5·18은 민주주의 파괴가 불러온 학살의 날이었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에겐 또 다른 악몽의 날임을 아시는지요. 2011년 그날은 공장 문이 닫히고 몰려온 용역깡패들이 피바람을 부르던 또 다른 계엄의 날이었습니다. 계엄사령관이 누구였는지 당신은 알 겁니다.
정몽구 회장님, 당신에겐 봄이 왔고 이제 여름도 올 텐데, 노동자들은 왜 아직도 당신 사진의 목을 꿰매던 그 겨울의 거리에 묶여 있나요. 왜 당신은 목을 붙이고도 말이 없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