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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뉘앙스 차이 / 김하수

등록 2018-05-06 22:15수정 2018-05-06 22:18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대화에서 문법이나 발음 못지않게 매우 예민한 것은 ‘뉘앙스’(어감)이다. 북한에서는 이 말을 ‘뜻빛갈[깔]’이라고 한다. 뉘앙스의 차이는 대화 참여자들의 ‘마음’, 곧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예민한 부분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앞으로 남과 북의 만남에서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남과 북의 관계가 얼음장처럼 얼어붙어 있을 때 어느 중립국에서 양쪽의 유학생이 우연히 마주쳤다. 남쪽 유학생이 “외국 생활에 어려움이 많으시죠?” 하고 인사하자 상대방은 “우리 조선사람들이 워낙 이악해서 일없습네다” 하고 답변했다. ‘이악하다’는 ‘야무지다’라는 뜻이다. 이미 그 뜻을 알고 있던 남쪽 유학생은 “아, 네. 악착같다는 말씀이시죠?”라고 아는 척했는데 여기서 사달이 났다. 북의 유학생은 어찌 동족에게 악착같다는 모진 말을 할 수 있냐고 서운해했다는 이야기다.

남쪽 사회는 워낙에 극심한 경쟁 체제를 경험해서인지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든지 공부했다든지 하는 말을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사전이나 문학작품 등에서는 “지주들의 악착같은 착취” 하면서 좀 더 심한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그러니 그들 나름 동족한테 사용하기에는 마땅치 않게 느꼈을 것이다. 또 달리 남쪽에서 ‘소행’이라 하면 괘씸한 짓을 가리키지만 북에서는 선행을 했을 때도 사용한다.

앞으로 남과 북이 만나면 단어 자체를 몰라서 저지르는 오해 못지않게 뉘앙스 차이 때문에 민망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선전용 확성기 철거하듯이 조금씩 서로의 방송도 개방하고, 출판물도 자유롭게 읽어볼 수 있게 되면 이러한 문제들은 아마도 저절로 풀려나가지 않을까 한다. 뉘앙스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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