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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찬, 세상의 저녁] 최인훈의 ‘광장’과 판문점의 역사성

등록 2018-04-26 18:13수정 2018-04-26 19:44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인 4·19혁명의 광채 속에서 태어난 이명준은 왜 바다에 투신했을까? 부활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활은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이루어지는 ‘찬란한 사건’이다. 최인훈은 4·19혁명의 광채 속에서 ‘찬란한 사건’에 대한 예감과 희망을 갖지 않았을까.
정찬
소설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기점으로 소비에트 해체가 이루어지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와해되면서 ‘절대적 객관성’이라는 역사의 등불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 변혁운동가들이 사상의 거처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 지 25년 남짓 지난 2016년 10월, 변혁운동가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평범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와 광장에 모이기 시작하여 2017년 5월까지 1700만개의 촛불로 분노와 슬픔에 싸인 한국 사회를 환하게 밝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분단과 냉전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등불을 켜 한반도를 넘어서서 동북아시아 전체를 비추고 있다.

역사적 사건은 세계와의 총체적 연관성 속에서 현전한다. 촛불혁명이 문재인이라는 역사적 존재와 만나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북의 지도자가 김정은이 아니었다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판문점 회담이 그전의 평양 회담과 다른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하기 때문이다. 3년간의 처참한 전쟁 후 남북이 서로에게 주적이 되어 65년 동안 고통스러운 출혈을 해온 한반도 냉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변화하리라는 기대가 높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군정과 친일세력의 도움으로 수립된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시아 최강의 반공군대를 만들어 국가를 병영화했다. 전쟁 자체가 악마적 참상이었기에 공산주의와 북한을 악마화하는 정치적 작업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승만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은 반공이라는 절대적 도그마(교리·교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그마가 무서운 것은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도그마는 그들의 세계관과 어긋나는 진실을 화형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향한다. 하지만 반공 도그마는 사상범과 양심범을 흉악범보다 더 가혹하게 단죄하는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들의 인권을 유린했다. 이 체제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4·19혁명이다.

소설가 최인훈이 1960년 10월 월간지 <새벽>에 <광장>을 발표하면서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남한의 정치 현실에 절망하여 월북했으나 북한의 정치 현실에도 절망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판문점이라는 역사적 공간으로 들어간 것은 전쟁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송환지로 남과 북을 거부하고 중립국을 선택한 이명준은 인도로 향하는 배 타고르호를 탔으나 그 땅에 발을 딛지 않는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쉬는’ 바다에 투신한 것이다.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인 4·19혁명의 광채 속에서 태어난 이명준은 왜 바다에 투신했을까? 부활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활은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이루어지는 ‘찬란한 사건’이다. 최인훈은 4·19혁명의 광채 속에서 ‘찬란한 사건’에 대한 예감과 희망을 갖지 않았을까. 그러나 4·19혁명은 이듬해 5월 군부 쿠데타에 짓이겨졌다.

최인훈은 <광장> 1989년판 머리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운명의 성격 탓으로 나는 이 주인공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주인공이 살았던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정치적 구조 속에 여전히 필자는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광장>이 6개의 판본을 갖고 있는 것은, 새 판본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머리말과 함께 소설이 변화한 것은 이명준이 최인훈의 소설적 자아이며, 분단된 나라의 고통을 겪는 한국인의 상징으로 최인훈의 가슴속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광장> 해설에서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쓴 가장 큰 이유는 한반도 분단체제를 거부한 이명준의 실존적 선택과 죽음이 품고 있는 정치적, 미학적 메타포의 깊이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개의 주소(경기도 파주시와 개성직할시)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이명준의 비극적 생애가 응축된 판문점이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공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명준을 기억하는 이들의 가슴에는 4·19혁명의 광채 속에서 기다린 ‘찬란한 사건’이 마침내 판문점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과 예감이 피어오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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