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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분단 중독증 / 김하수

등록 2018-04-22 18:14수정 2018-04-22 19:02

1991년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사실상’ 별개의 나라가 되었다. 분명히 ‘조국은 하나다’였는데 ‘하나였다’가 된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를 가리키는 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 ‘우리나라’ ‘한국’은 다 같은 말인가? ‘대한민국’은 남한의 헌법상 국호이다. 특히 축구 응원에서 ‘대한민국’을 많이 썼다. 그러다가도 남북 친선 축구에서는 그 말을 삼갔던 것만 보아도 그 느낌이 온다.

한 방송을 보니 “불가리아(약 11만㎢)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크기의…”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때의 ‘우리나라’는 남한(약 10만㎢)을 가리키는 셈이다. 베트남(약 33만㎢)에 대한 소개에서도 “우리나라의 약 3.3배에 달하는 면적에…”라는 표현은 우리나라를 남한으로 말할 때 가능하다. 우리에게 우리나라란 여권 없이 마음대로 쉽게 오가는 영토를 가리키는 셈이다.

반면에 ‘한국’이라 하면 남북한을 통틀어 가리키는 느낌이 든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한국 전쟁’ ‘한국어’ ‘분단 한국’ 등의 표현에서도 ‘한국’이 남북을 다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한국사’에는 북한 역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평창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토마스 바흐 올림픽위원장은 “한국과 북한이 평화를 위해 함께했다”고 치하했다. ‘남한과 북한’이라고 했다면 별로 어색하지 않았을 텐데 ‘한국과 북한’이라고 대등하게 나열한 것 자체가 마치 비문법적인 말 같아 보였다.

이러한 낯선 표현은 앞으로 국면이 바뀌어 가면서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한국이 남북한 같기도 하고 남한 같기도 한 여러 장면이 나타나는 경우 말이다. 이 모두 우리의 지독한 분단 중독의 후유증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낯선 말들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슬슬 그 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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