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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순택, 장면의 그늘] 미리 망한 사회의 판결문

등록 2018-04-12 18:30수정 2018-05-16 10:26

9년 전 불 꺼진 공장 안에서 겨우 찍은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임재춘씨는 말이 많아진다. 입으로 기타 한 대를 만드는 동안 그의 얼굴은 아주 잠깐 행복에 젖는다. 처음 봤을 땐 까만 머리칼이었다. 지금은 백발이다. 40대였던 해고노동자들이 싸늘한 거리농성장에서 환갑을 앞두고 있다.
노순택
사진사

톰 크루즈가 열연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에 겨우 종이 한장이 끼어 있음을 보여준다. 2054년 워싱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래의 이상세계는 다름 아닌 범죄 없는 사회다. 가능한 일일까. 최첨단 치안시스템 ‘프리크라임’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범죄자를 체포 단죄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한다. 주인공 존은 프리크라임을 이끄는 팀장이었지만, 어느 날 그 자신이 ‘예비범죄자’로 지목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천국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던 그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 흘리는 모습은 씁쓸하다. 애써 만든 천국이 실은 지옥이었다.

프리크라임은 공상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까. 정확히 번역하면 ‘예비검속’, 이 덫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잔혹한 집단학살의 한 구실이었다. 한국전쟁 때 전선 아닌 곳에서 자행된 숱한 민간인 학살 또한 “미래의 빨갱이를 미리 없앤다”는 근거 없는 근거 ‘예비검속’에 따른 짓이었다. 지나친 반공세상의 밝은 빛은 그토록 어두웠다. 영화가 그려낸 미래 상상계가 우리에겐 과거 현실계였던 셈이다.

음악을 몹시 사랑하는 사장님이 있었다. 기타공장 사장님이었다.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해 세계 기타시장의 3할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그런데도 적자가 났다. 분진과 유독가스 자욱한 공장이었지만 마스크 하나라도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빨아 써야 했다. 안타깝게도 잔업수당마저 지급할 여력이 없었다. 잦은 산업재해와 직업병은 조용히 집에 가서 쉬면 낫는 병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는 사장님의 병이었다. 흑자를 적자라고 부르는 불치병이었다. 애당초 흑자였으니, 노동자들이 가루가 되도록 일하자 눈덩이처럼 흑자가 불었다. 한 해 100억원 남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돈이란, 많이 벌수록 더 벌고 싶어지는가.

공장을 닫았다. 한국 공장을 닫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을 열었다. 이 땅 최저임금보다 더 싼 임금이 그곳에 있었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냥 몸부림이었나. 15만 볼트 고압송전탑에 오르는 고공의 몸부림이었다. 점거와 단식의 몸부림이었다. 해외원정투쟁의 몸부림이었다. 삼보일배, 오체투지, 삭발, 심지어 몸에 불마저 붙였다. 사장님은 하품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악기를 사랑했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왜 법에 호소하지 않고 엉뚱하고 과격한 투쟁을 일삼는가 탓하고 싶은가. 그 얘기를 해보자.

법치주의를 몹시 사랑하는 법관님이 있었다. 하물며 대법관님이었다. 쫓겨난 노동자들이 피눈물 흘리며 법정에서 다툰 끝에 고법에서 승소하고, 이어 대법원에 갔을 때 그는 앞선 판결을 뒤엎고 돌려보냈다. 마침내 재상고심에서 뭐라고 판결하였나. “미래에 올지 모를 경영상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박영호 사장의 악기에 맞아 쓰러졌다. 법치주의를 사랑하는 대법관의 법전에 맞아 혼절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축하해, 살인으로 살인 없는 세상을 만들었군!” 박영호 사장에게 돌려주련다. “축하해, 해고로 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었군. 공장을 없앴으니!” 대법관에게도 돌려주련다. “축하해, 법으로 법 없는 세상을 만들었군. 눈치면 됐지 법치가 뭔 필요야!”

12년 세월, 많은 이들이 떠났다. 남은 네 명, 방종운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씨가 인생을 쏟아부으며 복직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9년 전 불 꺼진 공장 안에서 겨우 찍은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임재춘씨는 말이 많아진다. 입으로 기타 한 대를 만드는 동안 그의 얼굴은 아주 잠깐 행복에 젖는다. 처음 봤을 땐 까만 머리칼이었다. 지금은 백발이다. 40대였던 해고노동자들이 싸늘한 거리농성장에서 환갑을 앞두고 있다. 이 환장할 만한 장면 앞에서 나는 판결한다. 이런 사회는, 미래에 올지 모를 혜성 충돌에 대처하기 위해 미리 망해버리는 게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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