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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순택, 장면의 그늘] 4·3 이후의 4·3은 누구의 책임인가

등록 2018-03-15 18:29수정 2018-03-15 19:39

미군의 태평양 군사전략을 뒷받침할 해군기지를 강행하기 위해 육지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강정마을에서 4·3은 옛일이 아니었다. 기지 건설용 철근 300톤을 과적했던 세월호에서도 4·3은 끝난 게 아니었다. 숱한 시공간에서 4·3은 거듭되었다. 악몽은 섬과 뭍을 그렇게 오갔다.
노순택
사진사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죽은 시인 김남주의 절규는 분단의 시공간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제주는 삼팔선에서 가장 먼 곳이지만, 삼팔선의 고통을 어디보다/누구보다 처절하게 겪어왔다. 뭍에서 벼려진 칼이 섬을 난자할 때, 도민 30만명 중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48년부터 6년 동안 이어진 죽임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그 섬에 없었다. 희생 규모를 지도로 엮은 ‘4·3 희생자 분포도’는 보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빨갱이가 많다며 미군정은 ‘레드 아일랜드’라 불렀다던가. 헛소리다. 죽인 이들의 피가 온 섬을 적셨기에 ‘붉은 섬’이 되고 말았다.

섬사람들은 악몽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 했다. <화산도>를 쓴 작가 김석범은 그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불렀다. 불타 사라진 마을 앞에서 죽은 이들을 떠올리며 통곡했다는 이유로 치도곤을 치렀던 ‘북촌 아이고 사건’(1954)은 살아남은 자에게 생존의 자세를 가르쳤다. 살고 싶다면, 살아도 죽은 목숨처럼!

그러므로 산 자가 모여 죽은 이들을 함께 추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4월3일 합동추모식에 가면 책을 나누어 준다. 망자의 이름을 적었을 뿐인데 두툼해져 버린 책 아닌 책. 어쩌면 그것은 ‘말할 수도 지울 수도 없던 기억’의 증언록 <순이 삼촌>의 다른 형식이 아닌가.

국가와 외세가 저지른 끔찍한 학살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나 그것은 죽은 대통령의 결단이었을 뿐, 우리 사회의 반성과 사과는 아니었다. 지난 10년의 정부는 폄훼와 모욕과 은폐에 오히려 앞장섰다. 되살아난 서북청년단이 뭍과 섬을 가리지 않고 날뛰었다. 학살을 최정점에서 지휘했던 미국은 아직도 말이 없다. 70년은 겨우 흘렀을 뿐, 지나가지 않았다.

미군의 태평양 군사전략을 뒷받침할 해군기지를 강행하기 위해 육지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강정마을에서 4·3은 옛일이 아니었다. 기지 건설용 철근 300톤을 과적했던 세월호에서도 4·3은 끝난 게 아니었다. 촛불기억탑을 부수고 성조기를 흔들던 애국자들의 가슴에 70년 전 ‘서북청년단의 제주 활약’은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희생자와 피해자가 도리어 죄인이 되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숨죽여야 했던 숱한 시공간에서 4·3은 거듭되었다. 악몽은 섬과 뭍을 그렇게 오갔다.

무엇보다 4·3은 이름을 돌려받지 못했다. 돌려받기는커녕 폭동과 난동으로 불리며 대역죄를 지은 양 숨죽여왔다. 진상이 드러나며 정부가 마지못해 불러준 이름이 ‘4·3사건’이다. 70년 세월, 사람의 평생이라 여겨도 좋을 시간이 흘렀다. 이제 이름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날의 피어린 투쟁은 분단과 외세통치를 거부했던 ‘항쟁’이자 국가폭력으로부터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려던 저항이었다. 국가가 저지른 명백한 ‘학살’이었다. 그 학살에 가담하길 거부했던 ‘여순의 저항’도 이름을 되찾아야 할 때다.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해군기지 입구 한 귀퉁이. 헝클어진 나무와 붉은 동백꽃과 쓰레기가 기이하게 어울려 있다. 해가 지자 눈발이 날렸다. 풍경은, 어제를 감추면서 이렇게 오늘을 드러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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