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태평양 군사전략을 뒷받침할 해군기지를 강행하기 위해 육지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강정마을에서 4·3은 옛일이 아니었다. 기지 건설용 철근 300톤을 과적했던 세월호에서도 4·3은 끝난 게 아니었다. 숱한 시공간에서 4·3은 거듭되었다. 악몽은 섬과 뭍을 그렇게 오갔다.
사진사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죽은 시인 김남주의 절규는 분단의 시공간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제주는 삼팔선에서 가장 먼 곳이지만, 삼팔선의 고통을 어디보다/누구보다 처절하게 겪어왔다. 뭍에서 벼려진 칼이 섬을 난자할 때, 도민 30만명 중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48년부터 6년 동안 이어진 죽임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그 섬에 없었다. 희생 규모를 지도로 엮은 ‘4·3 희생자 분포도’는 보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빨갱이가 많다며 미군정은 ‘레드 아일랜드’라 불렀다던가. 헛소리다. 죽인 이들의 피가 온 섬을 적셨기에 ‘붉은 섬’이 되고 말았다. 섬사람들은 악몽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 했다. <화산도>를 쓴 작가 김석범은 그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불렀다. 불타 사라진 마을 앞에서 죽은 이들을 떠올리며 통곡했다는 이유로 치도곤을 치렀던 ‘북촌 아이고 사건’(1954)은 살아남은 자에게 생존의 자세를 가르쳤다. 살고 싶다면, 살아도 죽은 목숨처럼! 그러므로 산 자가 모여 죽은 이들을 함께 추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4월3일 합동추모식에 가면 책을 나누어 준다. 망자의 이름을 적었을 뿐인데 두툼해져 버린 책 아닌 책. 어쩌면 그것은 ‘말할 수도 지울 수도 없던 기억’의 증언록 <순이 삼촌>의 다른 형식이 아닌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