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대한 것’이 지금, 내 앞에서 잡담하는 남녘 남자의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꽁초와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곧게 선 두 기둥의 머리에서 붉은 불이 타올랐다. 사진기를 꺼냈다.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 기묘한 관계를 부여해 사진으로 박아내는 건 내가 즐겨 온 농담이다.
사진사 13년 전 가을, 어쩌다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대동강가에 자리 잡은 옥류관이란 음식점에서 냉면을 먹었다.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달고 일정을 안내하던 초로의 북녘 남자는 식탁에 앉자마자 “평양냉면은 너무 맛이 없다”며 투덜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침을 튀기며 찬양하던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뜻밖의 불평에 깜짝 놀라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이 가관이었다. “우리 평양냉면은 너무 맛이 없어서 세 그릇밖에 먹지 못합네다. 맛이 없어도 많이들 드시라요.” ‘안내라는 이름의 꼼꼼하고 지나친 감시’로 짜증을 자아내던 그의 썰렁한 농담 하나에 식탁에 온기가 돌았다. 냉면으로 배를 채운 이들은 대동강이 훤히 보이는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사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금연을 결심했던 나는 끽연자들의 손가락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강 건너 또 하나의 담배꽁초에서 불이 타오르는 걸 발견했다. 주체사상탑이었다. 북조선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단 한 순간도 꺼져서는 안 되는 ‘혁명의 불꽃’이었다. 모두 잠든 깊은 새벽, 전력난을 겪던 평양이 어둠에 휩싸인 순간에도 홀로 도도하게 빛나던 탑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반드시 꺼뜨리고 부숴버려야 할 횃불이자 괴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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