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렬분자였을까. 독종이었을까. 밀리고 밀려, 당하고 당해, 벼랑 끝에 선 이들이 택할 수밖에 없던 모진 결심. ‘체념의 한 형식’이라 해야 할 그 몸부림을 ‘선택’이라 말할 수 있는가. 기댈 곳이 사람이 아니고 사회도 아닌, 정의와 법도 아닌 메마른 굴뚝이었다.
사진사 며칠 뒤면 그 참사가 9년을 맞는다. 용산 남일당, 내 앞에서 뜨겁고 빨간 혀를 날름대던 거대한 불길이 6명의 생을 장작 삼아 타올랐다는 걸 차마 믿을 수 없었다. 더 믿기 힘든 건 살기 위해 감행한 망루농성이 왜 하루 만에 끔찍한 참사가 되고 말았는지, 진실이 은폐된 채 흐르는 9년이다. 무전기를 꺼뒀다던, 그러므로 책임 없다던 지휘책임자는 경찰에서 의원으로 배지를 바꿔 달았다. 어깨에 찼던 무궁화를 지금 가슴에 꽂고 있다. 법을 집행하던 그자가 이제는 법을 만든다. 국회의원 김석기. 이명박근혜의 계절엔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약자의 절규는 짓밟히고, 짓밟은 자는 승승장구하는 개들의 풍경. 법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그 장면이야말로 내 눈엔 법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가를 반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부르대던 입법과 준법이 실은 탈법과 초법의 저열한 망나니 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몇해 전, 나와 친구들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편집국을 오가며 잠시 빈대살이를 했다. 폐간을 꿈꾸는 신문 <굴뚝신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박근혜의 절정기였던 그즈음 실로 많은 해고노동자들이 굴뚝과 광고탑, 망루와 고압 송전탑에 올라가 목숨 건 투쟁을 벌였다.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외침, 노사협약을 지키라는 절규, 비정규직을 철폐하라는 소박한 호소가 절박한 투쟁의 요체였다. 용역깡패가 쇠파이프를 들고 날뛰던 유성기업에서 노동자들은 맞지 않기 위해, 억울하게 죽은 동료 한광호의 유언을 전하기 위해 올라가야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 최종범은 “힘들고 배고팠다”는 유서를 남기고 삶을 등졌다.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죽음의 행렬로 이어졌고, 보다 못한 두 해고자가 공장 안 굴뚝에 올라 온몸으로 아니 언 몸으로 그 겨울을 통곡했다. 극렬분자였을까. 독종이었을까. 밀리고 밀려, 당하고 당해, 벼랑 끝에 선 이들이 택할 수밖에 없던 모진 결심. ‘체념의 한 형식’이라 해야 할 그 몸부림을 ‘선택’이라 말할 수 있는가. 기댈 곳이 사람이 아니고 사회도 아닌, 정의와 법도 아닌 메마른 굴뚝이었다. 용산참사는 쉽게 진압됐다간 죽어 내려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겼다. 고공을 결심한 이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랐고, 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 아래 가족과 친구들의 타는 가슴을 지켜본 기자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굴뚝신문>으로 고공의 사정을 땅에 알리자고 제안했을 때 열 곳 넘는 매체의 노동담당 기자들이 팔을 걷었다. 편집국 한켠을 빌려주고 인쇄를 도와준 신문사도 있었다. <굴뚝신문> 3호엔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400일 되도록 버틴 차광호의 투쟁이 실렸다. 그의 고백으로 채운 1면 제목을 잊을 수 없다. “날마다 떨어지는 꿈을 꾼다.” 굴뚝 아래를 내려다보는 광호씨의 수척한 얼굴 위로 검은 제목이 박혔을 때, 어지러웠다. 그런 현기증을 나누고픈 신문이었다. 차광호는 408일 만에 내려왔다. 고공농성 역사에 유례없는 비참한 기록이었다. 그날 회사는 고용과 단체협약, 노조 인정을 약속했다. 거짓말이었다. 블랙리스트 검열을 규탄하며 예술인들이 한겨울 광장노숙에 돌입했을 때, 해고노동자들이 함께한 건 당연했다. 부당해고에 맞선 그들은 잔인한 노동 블랙리스트의 피해자였고, 예술 검열의 한 까닭은 타인의 고통과 연대했다는 점 아니었던가. 촛불의 바다가 광장에서 넘실댈 때 파도의 한 너울은 해고노동자의 눈물이었다. 이제 정권이 바뀌고 헌정파괴자들이 감옥에 갇혔으니 세상도 바뀐 걸까. 지난해 11월12일 새벽, 두 노동자가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스타케미칼에서 파인텍으로 이름 바꾼 그 공장의 노동자 박준호·홍기탁이었다. 헌신짝처럼 버린 약속을 지키라며 75m 엄동설한을 버틴 지 오늘로 62일. 408일 굴뚝투쟁을 땅에서 지켜준 그들을 이제는 광호씨가 지키고 있다. 408을 더해 이제 굴뚝 위 470일이 흐르는 셈이다. “이명박근혜 때 찍소리 못하다가 정권 바뀌니 징징대는 노동적폐, 촛불혁명에 무임승차하려는 노동귀족”이라는 비아냥이 굴뚝을 향할 때, 나는 땅에서 어지러웠다. 묻고 싶었다. 광장을 메운 촛불이 그저 민주당의 심정으로 타오른 촛불이었나. 몸뚱이를 심지 삼아 애타게 타오르는 굴뚝의 불꽃은 왜 촛불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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