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행하고 있었다. 90년대 길목에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담론을 짊어진 작가들이 침묵했던, 혹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입 속의 검은 잎>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표현처럼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고 온몸으로’ 말했다.
소설가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산144 야산에 ‘기형도 문화공원’이 들어선 것은 2015년 7월이었다. 공원 안에 <백야> <입 속의 검은 잎> <식목제> <흔해빠진 독서> 등 4개의 시비(詩碑)가 묘비처럼 서 있다. 하늘이 어두워지면 이따금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나타날 듯한 그곳에 2017년 11월10일 새 집이 문을 열었다. 기형도 문학관이다. 기형도가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1989년 3월7일 새벽이었다. 향년 29.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그해 5월30일 출간되었다. “나는 그의 시들을 모아, 그의 시들의 방향으로 불을 지핀다. 향이 타는 냄새가 난다. 죽은 자를 진혼하는 향내 속에서 새로운 그의 육체가 나타난다.” 김현이 <입 속의 검은 잎> 작품론에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라는 부제를 달고, 자신을 ‘죽음만을 마주하고 있는 늙은이’로 표현한 것은 기형도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 속으로 파고들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시 김현은 치유가 불가능한 병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기형도의 죽음은 <입 속의 검은 잎>을 낳았고, <입 속의 검은 잎>은 김현의 진혼가를 낳았고, 김현의 진혼가는 <입 속의 검은 잎>을 ‘뜨거운 상징’으로 감쌌다. 뜨거운 상징에 감싸인 <입 속의 검은 잎>이 세계사적 변혁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우연이면서 필연이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현실사회주의의 와해는 한국문학을 혼돈에 빠뜨렸다. 인류의 오래된 꿈이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한 작가들은 등에 거대담론을 짊어진 채 역사의 폐허 속을 떠돌고 있었다. 그 폐허 속으로 흘러들어간 <입 속의 검은 잎>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행하고 있었다. 90년대 길목에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담론을 짊어진 작가들이 침묵했던, 혹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입 속의 검은 잎>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말하지 않았다. 세계의 끔찍한 불모성과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근원적 비극을 김수영의 표현처럼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고 온몸으로’ 말했다. 내가 기형도 문학관을 찾은 것은 눈이 흩날렸던 11월24일 정오 무렵이었다. 외벽에 <정거장에서의 충고> 첫 문장인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가 새겨진 흰 천이 걸려 있었다. 기형도는 <식목제>에서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틔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고 했다. ‘어느 날 불현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식목제> 부분) 시인은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흙 속에 묻힌 자신에게 어디에 묻혀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흙 속’이 나에게는 죽음의 지층처럼 느껴진다. 죽음의 지층에 묻힌 ‘나’는 ‘과거의 나’이면서 ‘미래의 나’다. 시간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참된 나’일 수도 있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불의의 죽음으로 시인에게 ‘영원한 상처’가 되어버린 시인의 누이로 생각할 수 있고, 죽은 누이와 시인이 뒤섞인 어떤 존재로도 생각할 수 있다. <식목제> 속의 공간은 현실의 공간과 다르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이는 초월적 공간이다. 이 공간 속 인물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물처럼 흐르면서 변화한다. 기형도 시의 놀라움은 여기에 있다. 시의 문이 사방팔방 열려 있는 것이다. 내가 기형도를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늦가을 문우들과의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기억의 강>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말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었다. <기억의 강>은 그해 ‘실천문학’ 가을호에 발표한 나의 중편소설로, 기억이 품고 있는 죄의식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야기의 원천은 기억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은 기억을 미학적 형태로 재창조하는 작업이다. 그러니까 기형도는 ‘기억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은 것이다.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그의 표정이 어둑한 세월 저쪽에서 아련히 떠오른다. 문학관은 시인의 생애를 모은 기억의 집이다. 문학관을 지키고 있는 시인의 누이 기향도는 여기가 기형도의 ‘빈집’이라고 했다. ‘빈집’에 갇힌 시인의 기억들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보았던, 혹은 그가 보여주었던 죽음의 형태가 그의 시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에서 어둡게 빛나고 있는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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