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시행하는 외국어 교육은 교양인이나 전문 지식인을 양성하기 위한 일반적인 방식이다. 대개는 잘 알려진 선진국 언어를 선택해서 공교육에 반영한다. 보통 식민지 출신 국가는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과거 지배국가의 언어를 계속해서 공교육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교육 인프라가 넉넉하고 비용이 덜 드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식민지 시절의 분노를 참을 길이 없어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교육에서 배제하는 경우이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식민지 시절 일본어 가능자가 꽤 많았는데 광복 이후 여지없이 공교육에서 배제해 버렸다. 지금의 일본어 전문가들은 식민지 시절 지식인들을 계승하고 있지 않다.
과거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옆 나라 나미비아를 강압적으로 지배했다. 나미비아가 독립하자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칸스어를 버리고 영어를 교육언어로 삼았다. 분노 때문이었다. 역시 아프리카의 르완다도 유혈 낭자한 내전 이후 식민지 시절부터 자국의 분열과 갈등에 연루되었던 프랑스어보다 이웃 나라와 소통이 원활한 영어를 중요한 교육용 외국어로 삼아가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미국 쪽에서 열심히 도와주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우크라이나 역시 소비에트에서 이탈한 다음에 러시아어 학습자가 줄고 영어 학습자가 대폭 늘었다. 영어가 세계어로 등극한 것은 오로지 언어의 기능적인 유용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존중하는 사회적 기풍은 국제 사회의 외국어 선택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 외국어로 얼마나 교양과 품위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하는 심리적 평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평화로 국제 사회에 공헌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식이 될 것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