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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외국어 차용 / 김하수

등록 2017-08-06 20:53수정 2017-08-06 20:57

서로 다른 언어가 접촉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언어에서 어휘를 빌려다가 사용하게 되기도 한다. 전문 용어로 이런 것을 ‘차용’이라고 한다. 우리가 쓰는 ‘버스’니 ‘택시’니 ‘티브이’니 하는 숱한 문물들이 이러한 ‘차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휘를 빌려 쓰는 과정에서 그 의미나 용도가 달라지기 쉽다.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과 토양의 차이가 반영되는 것이다.

‘모텔’이라는 말은 자동차로 멀리 여행하다가 들르게 되는 숙박업소라는 뜻의 영어에서 왔다. 그러나 우리한테 들어온 이 말은 여행자를 위한 숙박업소라기보다는 그저 그냥 유흥업소들 틈새에 섞여 있는 간이 숙박업소라는 뜻이 더 강하다. 말은 분명히 영어에서 차용해 왔는데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우리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외국어를 차용해서 우리한테 필요한 말을 만들어 쓰다 보면 가끔 그럴듯한 ‘걸작’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마 한국인들이 외국어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말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말은 ‘알바’가 아닌가 한다. 독일어의 ‘아르바이트’(Arbeit)보다 훨씬 유용하다. 독일어에서는 ‘노동, 일, 숙제, 일거리’ 등 매우 넓은 의미로 쓰이는데 한국어에 들어와서는 매우 유용한 개념인 ‘부업’ 내지는 ‘비정규 일자리’로 정착되었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근간에는 한국식 영어가 거꾸로 외국에 알려지기도 한다. 호들갑스러운 몇몇 정치인이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하는 ‘코리아 패싱’이 바로 그것이다. 농구의 속어로 쓰이던 ‘노룩패스’는 한 유명 정치인의 동영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언어적 세계화는 강력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투사되는 일방적 영향만 가리키지 않는다. 이렇게 거꾸로 주변 언어에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왕이면 좀더 의미 깊은 어휘로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저 그런 수준의 우스개 어휘로 세계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퍽 아쉽기만 할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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