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길이는 미터, 무게는 킬로그램, 부피는 리터 등의 단위로 표시함으로써 사물의 양을 정밀하게 표시하도록 한다. 양을 정확히 표시하지 못하면 상품 거래와 기술 공유에 치명적인 오류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 수량 단위도 일단 언어이니만큼 관습이나 전통에 따른 다양한 통속적 변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은 미터법을 법정 단위로 쓰고 있어서 공적인 문서나 계약서에는 다른 변종 단위를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상거래에는 미터법이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면도 있고, 또 일부 미터법이 우리의 수량 관념을 잘 드러내 주지 못하는 면도 있다.
종종 국제 석유값에 대한 보도를 보면 하나같이 ‘배럴’을 단위로 하여 국제가격을 표시한다. 반면에 우리의 일상생활은 ‘리터’로 이어나간다. 국내 소매가격 결정 구조가 회사마다 영업소마다 차이가 있는 탓이 아닌가 하지만 왜 하루하루 몇 리터의 기름으로 살아가는 보통사람이 배럴당 기름값을 알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부동산 가격에는 ‘제곱미터’를 사용해야 하지만 아직 ‘3.3제곱미터’로 사실상 평수를 구차스럽게 표기한 사례도 적지 않다. 대지나 주택의 넓이를 표시하는 평수는 우리의 생활 감각과 매우 깊은 관계에 있다. 어느 고위 공직자가 어느 동네에서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를 알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소박하게 살아왔는지 혹은 흥청망청 살아왔는지 알아낼 수 있는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합리적인 상거래를 위해서 표준단위를 법제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통속적인 언어 수요도 가볍게 무시해 버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식 공문서에는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신문 보도에는 보완적인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실용적이지 않을까 한다. 민속적으로 의미 있는 어휘를 법정 개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렇게 배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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