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영어 열등감은 특히 남다르다. 그로 말미암아 영어 능력에 대한 비상식적인 상식들도 넘쳐난다. ‘본토 발음’, ‘원어민’, ‘미국인들도 깜짝 놀라는’, ‘국제회의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같은 표현과 수사에는 우리가 ‘영어 능력’에 대해 얼마나 황당한 가치와 망상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어의 ‘본토 발음’은 단정 짓기 어렵다. 세계화되면서 그 본토가 어딘지도 모호해졌다. ‘원어민’이란 말은 그저 사교육 시장의 업자들이 애호하는 용어일 뿐이다. 역시 세계화된 영어의 원어민도 점점 모호해진다. 그저 백인 교사를 선호하는 인종적 편견을 부채질한다.
‘미국인들이 깜짝 놀라는 영어’에 대해 그리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미국인들은 성실히 하는 영어에 얼마든지 기꺼이 깜짝 놀라 주는 매너를 가지고 있다. 또 국제회의에서는 잘하든 못하든 연설이 끝나면 모두 열심히 박수를 쳐 준다.
최근에 임명된 외교부 장관에 대한 찬사 가운데 좀 민망한 부분이 영어 실력에 대한 과도한 찬양이다.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부러워할 일이기는 하지만 외교 수장에게는 언어 능력보다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판별해내는 능력 등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신임 외교부 장관의 가장 탁월한 발언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국회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 빠진 것 같다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세월호, 강남역 살인, 구의역 지하철 사고 등등 우리를 아프게 했던 많은 사건들, 또 나아가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난민 문제 등의 바탕에는 피해자, 곧 약자에 대한 유대감 결핍이 있는 것 아닌가. 그의 영어가 아닌 그의 식견을 칭찬하고 박수 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일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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