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발음의 변화 / 김하수

등록 2017-07-02 17:55수정 2017-07-02 19:08

글자는 말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맞춤법에는 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발음이 변하면 고민이 생긴다. 맞춤법을 고칠 것인가? 아니면 발음과 맞춤법의 일정한 차이를 인정하고 말 것인가? 발음이 달라졌다고 맞춤법을 대폭 고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충분히 교육받은 사람들’을 삽시간에 문맹자 비슷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이란 단어는 자음 앞에서는 [여덜 사람]처럼 발음하고, ‘사람 여덟이 모여서’라는 문장에서처럼 모음이 오면 [여덜비]라고 발음하는 게 옳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것까지 [여더리]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느새 ‘ㅂ’ 받침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닭’이란 단어도 좀 복잡해졌다. ‘암탉’과 ‘수탉’은 모음 [이]가 뒤에 붙으면 자연스레 발음이 [암탈기]와 [수탈기]가 된다. 그런데 비교적 최신 합성어인 ‘통닭, 불닭, 옻닭’에다가 모음 [이]를 붙이면 거의 대부분이 [통다기], [불다기], [옫따기]라고 하지, [통달기], [불달기], [옫딸기]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칡’도 이제는 주로 [치글 캐다]라고 하지 [칠글 캐다] 같은 ‘표준 발음’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주로 겹받침 단어에서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발음만이 아니다. ‘내가 할게’도 눈에 띄게 ‘-할께’라고 적는 사람이 많아졌다.

문자를 사용해온 역사가 깊은 다른 언어에서는 언어 변화에 굳이 맞춤법을 따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좋은 사전을 만든다. 사전을 활용하면서 모범적인 발음과 의미의 분화, 그리고 용법을 익히는 것이다. 맞춤법과 발음이 일치하는 경우는 보통 갓 태어난 맞춤법, 즉 맞춤법의 역사가 얕은 경우에나 가능하다. 그래서 좀 불편한 진실이지만 국어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다. 한번에 책 하나 떼고 작별하는 공부가 아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헌법재판관 흔들기, 최종 목적이 뭔가 [2월3일 뉴스뷰리핑] 1.

헌법재판관 흔들기, 최종 목적이 뭔가 [2월3일 뉴스뷰리핑]

[사설] 윤석열 접견한 권영세·권성동, ‘내란 들러리’ 원하나 2.

[사설] 윤석열 접견한 권영세·권성동, ‘내란 들러리’ 원하나

‘사상 검증’, ‘연좌제’ 시대로 돌아갔는가? [권태호 칼럼] 3.

‘사상 검증’, ‘연좌제’ 시대로 돌아갔는가? [권태호 칼럼]

유권자라면 냉철한 시각 지녀야 [왜냐면] 4.

유권자라면 냉철한 시각 지녀야 [왜냐면]

[사설] 이재용 항소심도 전부 무죄, 검찰 수사 실패 돌아봐야 5.

[사설] 이재용 항소심도 전부 무죄, 검찰 수사 실패 돌아봐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