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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역사와 욕망 / 김하수

등록 2017-06-11 20:24수정 2017-06-11 20:33

역사는 이야기로 구성되고 글로 기록된다. 그래서 달리 보면 말과 글의 역할을 보여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역사의 언어는 쉽게 왜곡되어 정치바람도 잘 탄다. 특히 역사 이야기로 자화자찬하려는 정치적 욕망은 정치 자체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근대 초기에 독일에서의 일이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썼던 게르만족에 대한 저술의 필사본이 15세기에 발견되었다. 그는 당시 야만인으로 알려졌던 게르만인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충직한지, 특히 여성들이 얼마나 순박하고 고결한지를 서술했다. 원래 공화정을 신봉하던 그는 제정 로마가 퇴락해 버린 데 실망하여 본 적도 없는 게르만족을 과장해서 그렇게 묘사했다.

이 책에 독일의 인문학자들은 열광했다. 자신들의 조상인 게르만이 최고의 고대 문명을 자랑하는 로마의 대역사가에게서 칭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근대 유럽의 낙후 지역으로서의 열등감을 떨치려 했다. 그러나 그 게르만은 독일인들만의 조상이라기보다는 모든 유럽인의 조상이었을 것이다.

애국주의에 굶주렸던 독일의 인문학자들은 ‘게르만다움’, ‘독일인’, ‘독일 민족’ 등 ‘구별해야 할 개념’들을 뒤섞어 썼다. 역사의 언어를 정치적으로 일탈시켜 사용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보다 후진적이었던 독일은 그 뒤로도 배타적인 민족주의, 광적인 애국주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들의 자아도취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역사가 남겨준 옛사람들의 삶의 현실은 그 아픈 자취에서 교훈을 찾을 때 무척 유용하다. 그러지 않고 화려한 영웅의 이야기로 정치적 환각 상태에 빠지는 것은 역사의 언어를 정치적 욕망으로 해석하는 미련한 일이다. 그 때문에 역사의 언어와 정치의 언어가 늘 건강하게 서로 거리를 두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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