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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받아쓰기 없기 / 김하수

등록 2017-05-28 18:16수정 2017-05-28 19:11

새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파격이라고 관심들이 많다. ‘파격’이란 오래된 격식이나 관행을 깨뜨리는 참신한 행동을 말하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그중에 언어 문제에 대한 파격은 단연코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쓰기하지 말고 의견을 말해 달라는 요구였다. 언어만이 아니라 기존의 태도, 생각, 가치 등을 전면적으로 혁신하려는 외침으로 해석된다.

남북한의 정치에 여러 가지 다른 점이 많고도 많지만 유일하게 똑같아 보이는 것이 상급자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참모들은 부지런히 수첩에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누구 하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오로지 상명하달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조직의 모습이었다. 어찌 이런 곳에서 창의적인 생각과 의견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잘되길 바라지만 적이 걱정되는 면은 이 결정이 대통령의 ‘지시’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참모 가운데 누군가가 이런 문제 제기를 먼저 했더라면 더 강력한 혁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의 자료조차 없앤다는 말에는 이제 우리도 무의미한 형식을 떨어내고 제대로 의견을 모으는 회의에 충실할 수 있는 계기가 왔구나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왕이면 언어 표현도 혁신의 길에 동반했으면 한다. 문장의 서술어들은 그 말의 사회적 기능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서술어에 ‘지시, 명령, 하달’과 같은 말이 들어가면 의사결정의 혁신 취지는 사라진다. ‘의견을 모았다’라든지, ‘어떤 의견으로 조정되었다’와 같은 표현이 더 바람직하다. ‘전격적으로, 즉각적으로’ 같은 사려 깊지 못한 부사어들도 삼갔으면 한다.

그래서 부디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주장을 통합하는 성숙한 정치의 첫걸음이 이 기회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말이 탁상공론의 도구에서 벗어나 삶을 변화시키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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