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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언어적 적폐 / 김하수

등록 2017-05-14 18:29수정 2017-05-14 19:10

‘적폐’라는 말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말한다. 개인 생활 같은 데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고 주로 낡은 사회조직이나 인습의 혁신을 요구하는 구호에 잘 쓰인다. 특히 요즘 같은 정치적 변동기에는 매우 유용하고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을 언어에다가 한번 적용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비속어나 일본식 표현 등에 대해서는 쉽게 비분강개를 한다. 그렇지만 그 외의 언어 문제에는 그리 경각심을 갖지 않는 편이다. 특히 그동안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했던 이상한 말들, 예를 들어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 같은 것들을 한낱 웃음거리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야말로 언어로 나타난 고약한 적폐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하다.

언어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쓰이는 유용한 이기이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피해자를 낳을 수도 있는 흉기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러한 화법을 공직자들이 남용한다는 것은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툭하면 자신에 대한 비판을 주변화시킨다든지 부차적 문제를 가지고 ‘국기문란’으로 몰아간다든지, “그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며 사사로운 주관적 해석으로 공적인 결정을 밀어붙였던 일들은 언어로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그 폐단을 쌓아왔는지를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언어적 적폐는 한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언론이 정확한 사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정확한 정보 해석을 제공해주어야 가능하다. 우리가 겪은 언어적 적폐는 보통사람들이 ‘언어’와 ‘매체’의 주인이 됨으로써 극복해 나가야 한다. 새 대통령의 취임사, 매우 간결했고 에두르지 않았고 소통적이었다. 계속 이렇게 우리 모두 언어와 매체의 주인으로 언어적 적폐를 닦아내야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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