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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찬, 세상의 저녁]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등록 2017-05-11 18:26수정 2017-05-11 20:47

정찬
소설가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쓰신 회고록 <운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회고록의 제목 ‘운명’이라는 언어 속에는 두 개의 의미가 겹쳐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입니다. 비극적 죽음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노무현의 운명을 대통령께서는 아프게, 간절한 그리움으로 들여다보면서 그 운명의 살과 뼈, 피와 눈물을 조탁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평생을 바친 삶의 가치를 지키기 위함으로 비칩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무언가를 버려야 합니다. 그분이 버린 것은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분에게 죽음은 삶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문재인의 운명’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노무현의 운명 속에서 노무현과 함께 사셨습니다. 노무현의 운명 속에 문재인의 삶이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운명이 문재인의 운명 속으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중첩된 운명의 결과가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운명이 완성되면서 문재인의 운명이 새롭게 시작된 것입니다.

5월 대선은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의 결실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2012년 12월의 대선 패배 이후 촛불을 처음 든 것은 2013년 9월2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천주교 시국미사 촛불집회에서였습니다. 집회의 표어는 ‘거짓의 암흑에 맑은 빛으로 답하라’였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기자의 질문에 “교인의 자격으로 참석했다”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들이 세월호의 통절한 슬픔을 겪으면서 세계인들이 놀란 ‘촛불혁명’을 이룬 것입니다.

2014년 8월16일 광화문 광장에서 34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의 손을 놓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교황은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에 맞서 싸우라고 인류에게 호소해 왔습니다.

‘죽음의 문화’라는 말을 먼저 쓴 분이 있습니다. 1984년과 89년 한국을 두 차례 방문하여 한국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거행했고, 남북 화해와 평화를 기원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사회주의 국가 붕괴 이후 자본주의 병폐에 관심을 쏟았던 그분은 “자본주의 사회가 죽음의 문화에 침식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죽음의 문화는 합법적인 사회제도 형태를 갖추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불의, 차별, 착취, 허위와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죽음의 문화에 깊숙이, 광범위하게 침식되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것은 1989년입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냉전체제가 무너졌음을 뜻하며, 냉전체제의 틀인 반공이데올로기가 무너졌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19대 대선 토론회에서 북한을 두고 ‘주적 논쟁’이 일어날 정도로 한국사회는 여전히 냉전이라는 죽음의 문화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국토 남동쪽 바닷가 곳곳에 묵시록적 재앙이 내재된 원전이 있습니다. 그동안 중수 누출, 배관 누수 같은 심각한 사고가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특히 지난번 지진 이후 원전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원전은 경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국토의 젖줄인 강이 죽어가고 있으며, 공기마저 미세먼지에 침식되고 있습니다. 노동의 가치는 땅바닥에 뒹굴고, 수많은 임금 생활자는 저임금과 과잉노동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 포박된 청소년들과 삼포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은 꿈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광장을 환히 밝혔던 촛불의 간절함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간절함은 고통에서 나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되는 고통입니다. 우리의 삶은 행동의 끊임없는 연결로 이루어집니다. 가장 아름다운 행동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행동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고통입니다.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께 간절함을 요구할 것이며, 간절함의 원천인 고통을 요구할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대통령께서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것은 문재인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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