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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정치의 유목화 / 김하수

등록 2017-02-19 17:28수정 2017-02-19 19:15

요즘 정치인들은 되도록 비정치적인 말로 유권자들을 잡아끌려 한다. 그래서 ‘대화’, ‘만남’, ‘토크쇼’처럼 무언가 보드라운 말을 앞세운다. 예전의 ‘정견 발표’, ‘유세’, ‘군중집회’ 같은 무겁던 말은 어느새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정치 활동도 인물들의 권위와 단단한 조직을 과시했었지만 이제는 유권자의 감성을 파고들려 한다. 면목 없는 일들이 생기면 ‘천막 당사’로 몸을 수그려 유권자들의 분노를 달래기도 했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부질없는 위선적 희극에 지나지 않았었다.

최근에는 천막이 아닌 ‘텐트’가 유행이다. 말뜻으로만 보면 천막이나 텐트나 그게 그것이다. 처음에는 텐트가 다양한 이익집단들을 크게 통합시킬 줄 알았는데 요즘은 딱히 갈 곳 없는 정치인들을 불러 모으는 멍석 같은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꾀어들면 빅텐트라고 하고 생각보다 고객들이 그리 많지 않으면 스몰텐트라고 부르며 정치적 호객을 열심히 한다.

활동 공간도 달리 말한다. 과거에는 안국동, 동교동, 상도동 하면서 정치인들 자택이 중심이었는데 이젠 그것도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이제는 ‘캠프’ 같은 말이 대세다. 캠프는 일종의 ‘주둔지’, ‘야영지’ 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역시 천막과 텐트로 이루어진다.

그러고 보니 정치적 개념이 농경사회에서 유목사회로 달라진 느낌이 든다. 그동안 새로운 매체와 메시지 전달 방식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정책도 이제는 우클릭이니 좌클릭이니 하면서 좌표 수정하듯이 말한다. 정치 언어가 달라진 것이다. 이젠 유권자들도 새로운 정치 언어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소망을 담아야 한다. 자칫하면 또다시 그들의 어휘에 정신 팔려 천막 구경이나 하다가 세월을 놓치게 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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