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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법과 도덕 / 김하수

등록 2017-01-08 16:04수정 2017-01-08 19:06

가벼이 스치듯이 생각해보면 언어의 쓰임새는 깃털보다 가볍다. 그러나 깊이 돌이켜보면 언어의 무게는 태산보다 무겁다. 언어는 정치와 법률, 종교와 도덕 같은 묵직한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이것이 시대정신에 맞추어 제도화되어, 우리가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규범’은 이 시대의 법률적 언어와 도덕적 언어로 구성하게 된다.

우리는 법을 성실히 지킴으로써 스스로 정당해진다. 동시에 도덕률도 잘 준수함으로써 자신의 행동과 사고가 올바름을 확신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법과 도덕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공직자를 준엄하게 비판할 때에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법과 도덕은 함께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법과 도덕을 나누어 말하는 일이 눈에 띈다. “법적으로는 잘못이 없으나 도의적으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식의 표현들이다. 얼핏 들으면 도덕률을 중요시하는 것 같지만 법에 저촉만 안 되면 그까짓 도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꼼수가 깊이 박혀 있다. 죄송하다는 말 정도는 골백번 해도 전혀 손해날 것 없다는 천박한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도덕의 알맹이보다 법의 껍데기만 갖춘 눈속임이다.

도덕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며, 법 조항 문구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밑바닥에는 근본적인 반도덕성이 숨어 있다. 법 조항 하나하나의 규정은 도덕에서 추구하는 ‘선량함’과 ‘올바름’을 구현하려는 보편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도덕 정신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단 법 조항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도덕률의 빈틈만 노리면 된다고 보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법꾸라지’들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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