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경제대 교수 대학살의 여진이 이어지고 피냄새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홋타와 다케다의 문학이 열어가려 했던 것은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자율적인 윤리적 갱생을 꾀하려던 길이었다. 그 길을 걷고자 했던 사람들은 전후 한때 소수이긴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은 잡초에 뒤덮여 지도에서도 사라지려 하고 있는 그 길을 헨미 요라는 작가가 걸어가려 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책 하나를 소개하겠다. 현대 일본의 소설가 헨미 요(邊見庸, 72)의 <1★9★3★7>(이쿠미나)다. 이미 지난해에 초판을 읽었으나 조만간 간행될 문고판에 ‘해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정독을 했다. 헨미 요는 한마디로 일본 사회의 이단아요 반항자다. 1944년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서 태어나, 1970년에 교도통신사에 들어갔고 베이징 특파원, 하노이지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에 <자동 기상(起床)장치>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다. 1994년에는 <먹는 사람들>을 냈다. 그런 그가 1937년이라는 시점에 초점을 맞춰 역사적 시간을 오가면서 ‘일본과 일본인’을 철저히 해부한 것이 이 책이다. 그 해부의 메스는 고바야시 히데오, 가케하시 아키히데, 마루야마 마사오, 오즈 야스지로 등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에서부터 아버지와 그 자신까지도 용서 없이 겨냥한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65년 넘게 살았지만 최근 몇 년 내가 ‘일본과 일본인’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우리가 일찍이 책에서 배운 ‘정치적 반동’은 예전에 배운 모습 그대로 눈앞에 나타났다. 반동에 대한 무대책과 무기력도 충실히 반복되고 있다. 반지성주의가 기세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내가 본 얼마 되지 않는 책들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이 <1★9★3★7>이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이 놀라운 사태’는 실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중략) 그것은 오늘 이렇게 돼버린 것이 아니라 내(우리)가 어쩌다가 오늘을 ‘만들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이런 물음에 대해 거기에 필적할 만한 무게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까. 만일 끝내 들려오지 않는다면 일본 사회는 오늘날의 ‘반동’에 저항할 길 없이 또다시 파국을 향해 떠밀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초판이 간행된 지 약 1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거기에 ‘대답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1937년은 일본의 중국 침략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고, 일본 본토에서는 사람들이 전승 기분에 들떠 있었다. 그해 12월에는 ‘난징 대학살’이 거듭 자행됐다. 헨미 요는 이 ‘기억’이 집단적으로 소거된 일본의 위기적 현상에 과감한 저항을 시도한다. 그 중요한 실마리가 된 것은, 지금은 거의 잊혀가고 있는 ‘전후문학’의 대표적 작가 홋타 요시에의 소설 <시간>과 다케다 다이준의 <네 엄마를!>이다. 1955년에 발표된 홋타의 작품은 주인공을 중국인 지식인으로 설정하고, 말하자면 타자인 피해자 쪽 시선으로 일본의 침략과 학살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이 본 “참담한 일”은 예컨대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다. “단수(斷首, 목 치기). 단수(斷手, 손 자르기). 단지(斷肢, 팔다리 자르기). 들개가 알몸의 사체를 뜯어먹을 때는 반드시 고환부터 먹고 그다음 복부(배)로 간다. 인간 또한 알몸의 사체를 집적거릴 경우 먼저 성기를, 그다음에 배를 가른다. 개나 고양이는 뜯어먹은 뒤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죽인 뒤 갈 길을 모른다. 만일 그런 게 있다면 다시 죽이는 길을 갈 뿐.” 다케다의 작품은 홋타의 <시간>보다 1년 늦게 공표됐다.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 병사들이 사로잡은 중국인 엄마와 아들에게 성행위를 강요해 그것을 구경하며 조롱한 뒤 결국 두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이야기다. 다케다 자신의 전장 체험이 투영된 작품이다. 헨미 요는 장교로 중국 전선에 종군한 자신의 아버지도 이런 짓거리에 가담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아니, 거의 그걸 확신하고 있다. “이 사람(헨미 요의 아버지)은 무슨 짓을 하고 온 건가. 무엇을 보고 온 것인가. 그런 의문들은 결국 따져 묻지 않았던 내게도 불문에 부쳐서 상처 입지 않으려는 교활한 생각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이고, 끝내 얘기하지 않은 아버지와 끝내 직접 물어보지 않았던 나는 필시 같은 죄를 지은 것이다. 묻지 않는 것-말하지 않는 것. 많은 경우 거기에는 전후 정신의 수상한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 ‘말하지 않는 것’ ‘묻지 않는 것’을 통해 ‘일본의 전후 정신의 수상한 균형’은 유지돼온 것이다. 굳이 말하려는 것, 질문하려는 것은 무시되고 고립된다. 그것이 일본 사회를 지탱해왔다. 헨미 요는 아버지의 초상을 그림으로써 엷은 미소 뒤에 감춰진 전후 일본인의 민얼굴을 그려냈다. 대학살의 여진이 이어지고 피냄새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홋타와 다케다의 문학이 열어가려 했던 것은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자율적인 윤리적 갱생을 꾀하려던 길이었다. 그 길을 걷고자 했던 사람들은 전후 한때 소수이긴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은 잡초에 뒤덮여 지도에서도 사라지려 하고 있는 그 길을 헨미 요라는 작가가 걸어가려 하고 있다. “언제였던가, 아직 어렸을 때 술취한 아버지가 갑자기 얘기한 적이 있다. 조용한 고백은 아니었다. 참회도 아니었다. 야만적인 노기를 띤, 감출 수 없는, 감출 기색도 없는 얘기였다. 그 기억은 아직도 선연하다. ‘조센진(조선인)은 안 돼. 저놈들은 손으로 때려선 안 돼. 슬리퍼로 두들겨패야 돼. …’ 귀를 의심했다. 미친(발광)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조선인’인 내게는 평정심으로 이런 얘기를 읽는 게 불가능하다. 나 자신이 두들겨맞은 것도 아닌데 신경이 곤두선 듯한 통증과 혐오를 느낀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어떠한가? 직장 동료나 이웃 주민, 온화하고 이성적으로만 보이는 사람들 마음 깊숙한 곳에 이런 심리가 도사리고 있다가 갑자기 터져나오지는 않는가. 그런 예감 때문에 나는 늘 경계하고 있다. 그게 바로 식민지배라는 것이며, ‘조선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선인’을 ‘흑인’ ‘인디언’ 또는 ‘여성’ 등으로 바꿔놓으면, 전세계로 확산돼 아직도 극복되지 못한 식민지주의의 심성이 잘 드러난다. 생각해보면 헨미 요의 아버지가 소수 예외였을 리가 없다. 그것은 일본인과 조선인 간에 일상화돼 있던 행위였다. 일본은 ‘문명화’를 앞세우고 조선을 ‘병합’한 뒤에도 조선에서 비문명적인 형벌인 태형을 잔존시켰고 그것을 조선인에게만 적용했다.(김동인 <태형> 참조) 태장을 한 번 후려치면 격심한 통증과 굴욕감이 조선인의 신체에 글자 그대로 때려박혔다. 동시에 태장을 후려치는 관헌이나 그걸 방관하고 있던 일본인 식민자는 한 번 후려칠 때마다 노예 주인의 심성을 자신의 몸에 때려박아 넣었다. “미친 건가”라고 했지만, 그건 갑자기 그리된 게 아니라 ‘류큐 처분(오키나와 병탄)에서 시작돼 청일·러일 전쟁을 거쳐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이르는 근대사 시발점에서부터’ ‘발광’했던 것이다. 태형은 그 하나의 예일 뿐이다. 또 전후 일본인에게는 그 역사를 뼈에 사무치게 성찰하고 ‘제정신’을 차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런 기회를 모조리 무시해버렸다. 작금의 일본 사회는 점점 ‘발광’의 도가 심해지고 있다. 이미 ‘재특회’ 등 일본의 배외주의자들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실천하고 있고, 얼마 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11만명이 넘는 일본 시민이 그들에게 투표했다. 그런 가운데 설사 단 한 사람일지라도 일본인 작가의 이런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면 요행이다. 아직 ‘제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사람이 간신히나마 살아남아 있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노예가 몸에 새겨진 노예근성을 극복하는 게 어렵듯이, 노예 주인이 고통에 찬 자성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그런 심성을 버리기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일본 사회에 그런 자성의 필요를 인식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적고, 지극히 미력하다. 나는 이 짧은 글을 헨미 요라는 작가를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썼다. ‘일본과 일본인’이 얼마나 구제받기 어려운지 개탄하려는 게 아니다. 헨미 요의 작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 조선인들이 자기 몸에 새겨진 ‘노예근성’을 자각해서 그것을 극복하고 식민지주의와 계속 싸워나가기 위해서다.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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