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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한자를 몰라도 / 김하수

등록 2016-10-09 17:53수정 2016-10-09 19:23

한자를 잘 아는 사람들이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쉽게 믿게 되는 것이, 한자를 알면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럴까? ‘부모’나 ‘농촌’ 같은 말의 의미를 정말 父母, 農村이라는 한자를 통해서만 쉽게 알 수 있을까?

사실 그러한 어휘의 대부분은 소리만 들어도 금방 그 의미가 떠오르도록 우리의 인지 과정은 고도로 정비되어 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한자어는 ‘한자’라는 중간 단계가 필요 없이 의미를 직접 파악해 버린다. 좀 어려운 말의 경우에, 癡?(치매), 蒙昧(몽매)와 같은 말들은 일일이 한자를 따지느니 그냥 말소리만 외우고 개념을 익히는 게 훨씬 더 편하다.

한자는 원래의 의미를 잃고 어휘의 한 부분으로 변한 경우도 많다. 사람의 모양을 한 노리개를 인형(人形)이라 한다. 한자로 사람의 모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곰이나 개의 모양으로 만든 것을 웅형(熊形)이나 견형(犬形)이라 하지 않고 그냥 곰 인형, 개 인형이라고 한다. 이미 인형이라는 말이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경우도 한자 ‘人形’은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한다.

저녁거리에 주전부리를 파는 ‘포장마차’를 보라. 말이 끄는 포장마차를 보았는가? 말이 끄는 수레로 비유하다 보니 한자는 있으나 마나 하게 되었다. 수많은 한자어의 처지가 이러하다. 닭의 가슴에 붙은 살을 계륵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닭가슴살은 영양식으로, 불필요한 군것을 가리켜 계륵이라 한다. 한자의 ‘어휘 의미’로 나타낼 수 없는 ‘감성적 의미’가 풍부해진 것이다.

한자를 몰라도, 또는 안 써도 이제는 언어생활에 큰 불편은 없게 되었다. 2천여 년 동안 인습화된 문자 생활이 겨우 100년 남짓 동안 혁신된 셈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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