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콕스 영국 노동당 의원의 살해범에게 판사가 신원확인을 하자, 그는 이름을 대지 않고 “내 이름은 배신자들에게 죽음을, 영국에 자유를”이라고 대답했다. 살해범 토머스 메어는 오랫동안 다양한 극우 조직들과 연계돼 있었다. 메어는 콕스 의원 살해를 통해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자’는 우파의 열망을 보여줬다. 메어가 더 성능 좋은 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지난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살해한 광란적인 아네르스 브레이비크처럼 대량학살을 했을 수도 있다.
오마르 마틴이 몇주 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49명을 살해했다. 범행 동기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슬람국가’나 알카에다와 연대감을 표시했다. 그가 생존해 재판장에 섰다면, 그 역시 법정에서 이름을 말하기를 거부하고 배신자에 대한 반대와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을 것이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메어나 마틴은 대의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대의는 개인주의에 대한 반대였다. 우리는 ‘외로운 늑대’들이 벌이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가벼운 술집과 정부 건물, 안전했던 일상적 공간에서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파 극단주의자들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서로를 증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더 증오하는 대상은 ‘리버럴’(진보적 자유주의자)이다.
메어와 브레이비크 같은 유럽의 외로운 늑대들은 자신들의 국가에서 다양성이 확대되는 것을 비난하며 노동당 활동가들을 겨냥했다. 그들이 보기에 리버럴들은 자유주의적인 이민 정책과 다문화적인 교육 정책, 세계에 대한 국제주의적 접근을 취함으로써, ‘민족적 순수성’을 약화시켜왔다.
이슬람국가의 지지자들도 동성애나 여성의 권리 같은 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을 경멸하고 있다. 그들은 현대성이나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주장에 불편해한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소수의 견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무장을 하고 싸우려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지만, 이런 견해 자체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리버럴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을 동원해왔다. 유럽연합 탈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동안의 이민 정책과 유럽연합의 자유주의적 정책, 그리고 영국이 다른 유럽 국가들과 협력하려는 구상 자체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데 이런 반 유럽연합 정서는 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최근 미국 연구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스에서 절반 이상이 유럽연합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 번영의 핵심 축인 독일에서조차, 유럽연합에 호의적인 사람이 비호의적인 사람보다 겨우 2%포인트 많았다.
이번 브렉시트에서 중요한 세대차도 나타났다. 젊은층은 더 리버럴하며, 유럽대륙 여행을 좋아하고, 어느 국가에 살든 개의치 않는다. 반면, 보수적인 고령 세대는 대체로 유럽 통합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영국이 처음이지만, 아마도 다른 유럽 국가의 유권자들도 국민투표를 통해 광란의 총기 살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현실화시킬지도 모른다.
미국을 보면, 아주 부유하기는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도 외로운 늑대다. 트럼프는 공화당 내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있다.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유럽 사촌들처럼, 트럼프도 국가의 부활, 라틴계나 무슬림 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 경제 및 정치적 엘리트들에 대한 불신 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대중에 영합해왔다.
우리는 지금, 증오의 또 다른 악순환을 목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유럽연합 회의론자들은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이슬람국가는 비무슬림들에 대한 증오를 부채질한다. 이번에는 단지 말의 전쟁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전쟁이다. 사상자들은 어느 진영과도 관계하고 싶어하지 않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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