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 시인
물질세계에서 더 쪼갤 수 없는 입자를 원자라고 부른다. 라이프니츠는 정신세계에서도 그런 입자가 있다고 상상하고 이를 모나드라고 불렀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닫힌 모나드’라 불린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모나드가 모여서 어떻게 질서 있는 세상을 구성할 수 있을까? 라이프니츠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정조화’란 생각을 도입해야 했다. 서로 다른 모나드가 질서와 조화를 이루도록 처음부터 신에 의해 조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해도 세상은 조화롭게 운영될 것이다. 이들에게 ‘헬조선’이란 현실이 아니라 불평분자들의 선동적 구호에 불과하다. 사회학자 타르드는 ‘열린 모나드’를 상상했다. 예정조화 없이도 세상이 상호작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닫힌 방으로 비유되는 모나드를 열린 창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서로가 침투하고 스며든다면 세상은 영향을 주고받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 칼럼에서 그런 침투(풍자)와 스며듦(예찬)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정치풍자와 육아일기를 오가는 글을 어지럽다 하지 않고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아기에게 “안녕” 하면 손목을 돌리며 인사한다. 악수하는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인사드린다. 안녕히. 만나서 반가워요.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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