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제자들이 큰 소리로 찬양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노래 부르지 못하게 해달라고 청하자 예수가 대답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입을 다물면 돌이, 나무가, 부는 바람이, 흐르는 물이 그것을 대신할 것이다. 돌들은 어떻게 말했을까? 나는 침묵으로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들이 입을 열어 소리를 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돌의 본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돌은 제 있는 곳에 가만히 있지만, 가만히 있는 것으로 신의 영광을 찬양했을 것이다. 어떤 말은 그렇게 침묵으로 전달된다. 생각해보면 모든 말은 침묵에서 솟아나서 침묵으로 돌아가며, 따라서 침묵이야말로 말을 낳은 본바탕이다. 돌은 그 바탕, 본질, 기원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지난달에 전두환씨 부부가 “돌에 맞는 한이 있더라도 광주 사람들 한이 풀린다면 가겠다”고 말하며 광주 방문을 추진했다고 한다. 누군가 그 기사를 언급하며, ‘돌잔치’란 제목을 붙였다. 이 유머에는 피눈물이 서려 있다. 그가 광주에 왔어도 돌들이 날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돌들은 침묵하는 것으로써도 제 할 말을 한다. 광주에 있는 어떤 돌들도 소리 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침묵이 그들의 함성이었을 것이다.
권혁웅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