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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어버이들 / 김하수

등록 2016-04-24 19:11

말의 용도를 확장하여 한동안 쓰다 보면 정말로 그 뜻에 변화가 생긴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어른’이란 말의 존칭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노인’에 대한 존칭으로도 쓰이기 시작해서 요즘은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이제는 ‘이모’라는 말도 어머니의 자매만을 일컫지 않으며, ‘언니’라는 말도 더 이상 여성들의 손위 자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좋게 말해 의미가 풍부해진 것이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어버이’라는 말은 부모를 뜻하는 말이다. 부모라는 말보다 더 정감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단어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북녘 사회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버이’가 아닌 ‘정치적 존경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원래 있던 ‘부모, 양친’이라는 뜻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한 단어에 두 가지 뜻이 깃든 것이다.

최근에 어버이라는 말이 남쪽에서도 또 다른 정치적 의미를 획득했다. 매우 적극적인 보수적 사회운동에 열렬히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단체명에서 비롯했는데, 이제는 거의 사회적 상징성을 지닌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남과 북에서 묘하게도 동일한 어휘가 전혀 다른 함축적인 의미를 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감 어리던 그 말의 의미가 웬일인지 매우 긴장되고 조심스럽고 거북하게만 느껴진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어버이라는 말은 어느새 남과 북에서 무언가 권위적이고 완고한 의미를 품은 어휘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라면 정당하게 개념화된 어휘로 정치적 가치를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비정치적인 어버이라는 말이 정치적인 함의를 얻게 되는 것은 아직 우리가 정치를 정직하고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탓이다. 남과 북의 관계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토대로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삶을 다정다감하게 만들던 어휘가 갑자기 대립을 상징하는 말로 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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