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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밥의 왕

등록 2016-03-22 18:31수정 2016-03-22 19:46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아기가 밥맛을 알기 시작했다. 벌써 이유식 끊을 때가 되었나? 엄마 아빠가 밥 먹는 걸 곁눈질하며 입맛을 다신다. 시험 삼아 몇 알 떼어 주었더니 금세 삼키고는 또 입을 벌린다. 젖을 먹을 때에는 ‘마른논에 물 들어간다’고 했는데, 이번엔 ‘파쇄기에 종이 들어간다’고 하면 될까? 앞니가 위아래 다섯 개여서, 그 조그만 입으로 오물거리며 받는 족족 삼킨다. 여차하면 숟가락이나 손가락마저 삼킬 기세다. 젖을 먹을 때는 입이 펌프 같더니, 지금 아기 입은 컨베이어벨트다. 낮에는 외할머니가 튀밥을 사오셨다. 과일 담는 큰 쟁반에 튀밥을 펼쳐놓았더니 볼 풀장에 처음 간 아기처럼 첨벙거리며 야단이 났다. 산지사방으로 튀밥 방울이 튀는데 그 와중에도 손끝에 붙은 밥알은 여지없이 입으로 간다. 이렇게 밥을 좋아하는 아기라니, 너는 그야말로 신토불이로구나. 우리나라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니. 아기는 곧 반찬도 먹게 되겠지.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삶의 쓰고 매운 경지를 알게 되겠지. 그때마다 네가 밥의 왕이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밥의 그 순결함을, 순백(純白)의 경지를, 순진무구를, 순한 성정을, 순리(純理)를, 순정함을, 밥을 처음 받아들일 때의 그 순망치한을, 순박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땅에 태어나 사는 일의 신산고초를 겪을 때마다 먹는 일의 성스러움으로 그것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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