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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아인팔경

등록 2016-03-15 20:41수정 2016-03-15 21:02

우리 집에는 아인팔경(雅仁八景)이 있다. 아기가 좋아하는 여덟 장소다. 이사를 할 예정이라 조만간 팔경도 사라지겠지. 기록으로 남겨두자. ① 가스오븐레인지 앞. 아기는 틈만 나면 오븐 거울을 핥는다. 참회록을 쓰는 곳이다. ② 뒤를 받쳐둔 흔들의자. 올라서서 한 팔을 걸치고 내려다보기. 호연지기를 기르는 곳이다. ③ 거실 서랍장 위. 여기 올라 책장을 곁눈질하기. 멀리 던지기에 딱 좋은 곳이다. ④ 식탁 의자 다리. 미로 찾기 하는 곳이다. 여기까지는 지난번에 소개했다. ⑤ 아기 욕조. 앉아서 두 손으로 첨벙거리기. 땅 짚고 헤엄치는 곳이다. ⑥ 러닝머신. 다리 사이 움푹 돋은 부분을 기어가기. 거길 기어 넘으면 ‘악어 떼가 나온다’는 듯. ⑦ 엄마 품. 자다 깨면 아기는 울면서 엄마 품을 찾는다. 아빠가 안으면 발버둥치며 거부한다. 아빠에게는 효녀, 엄마에게는 연약한 병아리다. ⑧ 아빠 목. 목말을 태우면 아빠를 곧장 말 취급한다. 손으로 머리를 뜯고 발로 찬다. 갈기를 당기며 박차를 가하는 거다. 이사를 하면 앞의 여섯 풍경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밤잠이 늘고 있으니 일곱 번째도 곧 사라지겠지. 체중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 더 지나면 목말이 아니라 목 디스크가 올 것이다.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여덟 번째도 얼마 안 남았다. 그런들 어떠랴. 새로운 팔경이 하나씩 빈자리를 채워갈 텐데. 여전히 그 풍경의 주인은 아인이일 텐데.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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