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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안 돼요, 돼요……

등록 2016-02-22 20:09수정 2016-02-22 22:13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10개월을 넘자 아기가 여간 날래진 게 아니다. 목이 말라 부엌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여는데, 거실에 있던 아기가 어느새 발밑에 도착해 있다. 어제 아침에는 잠결에 누가 얼굴을 만져서 고개를 돌렸는데, 귓가에 이상한 노래가 와 닿아서 잠이 깼다. 내가 일어나지 않자 흥미를 잃은 아기가 어느새 거실로 가서 마이크를 잡은 거다. 노래로 깨울 생각을 했나 보다. 그래 봐야 아직 모친송밖에 못 부르는 녀석이. “엄마 엄마……” 이렇게 시작해서 “음마!”로 끝나는 노래다. 오늘 낮에는 거실 서랍장에 올라앉아서 그 뒤에 있는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또 저기 올라가 있네. 노리는 게 따로 있어.” 책들이 아니라 책장 한쪽 구석에 모아둔 시디(CD) 음반들을 노리는 것이라 한다. 음반들은 아래에서 둘째 칸에 있다. 아기가 서랍장에 올라가 앉으면 바로 어깨 높이다. 손에도 잡히고 가벼워서 던지기 딱 좋은 장난감이다. “아인아, 안 돼.” 엄마 말을 듣자 신기하게도 뻗치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웃는다. “안 된다는 소리를 알아듣나 봐. 신기하지?” 아, 그게 아니다. 동굴에 든 연인이 술래잡기를 했다. 연인의 손이 몸에 닿는 순간, 다른 연인이 외쳤다. “어머, 안 돼요!” 소리가 동굴 벽을 울려나갔다. “안, 돼요, 돼요, 돼요……” 여보, 그거 오래된 농담이라고. 아기는 저 음반들 죄다 던져도 된다고 듣고 있는 거라고.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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