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여보세요

등록 2016-02-21 19:02수정 2016-02-21 21:13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거실에 있는 장난감 중에 아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텔레비전(TV) 리모컨이다. 다른 것은 갖고 놀아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리모컨은 잡자마자 엄마가 채가기 때문이다. “안 돼! 이건 더러워.” 다른 장난감은 정기적으로 씻고 소독하지만 리모컨은 전자제품이니 그럴 수가 없다. 꼭 더러워서만은 아니고, ‘응팔’의 키스신이나 ‘복면가왕’의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주세요” 다음 장면이 아기의 손짓 한 번에 사라져서이기도 하겠다. 보통은 다른 장난감과 마찬가지로 리모컨도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놀이를 선보였다. “아인아, 여보세요, 해봐” 그랬더니, 리모컨 잡은 오른손을 오른쪽 귀에 척 갖다 대는 거다. “봤지? 전화 놀이야.” 아직 말은 잘 못하지만, 전화 놀이의 핵심은 말이 아니다. 전화를 걸거나 받는 사람 누구나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여기 좀 보세요란 뜻이다. 말하는 게 아니라 보는 것, 이것이 관건이다. 아기가 리모컨을 들고 하려는 말을 길게 이어붙이면 바로 ‘밀양 아리랑’이 된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래, 아기야. 너를 꽃처럼 보마. 그러고 보니 전화기 대신 리모컨을 든 것에도 이유가 있었구나. 아기는 지금 리모컨을 들고 엄마 아빠를 리모트 컨트롤하고 있는 거다. 웃고 박수도 좀 쳐보라고 조종 버튼을 누른 거다.

권혁웅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1.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사설] 윤석열 구속기소, 신속한 재판으로 준엄히 단죄해야 2.

[사설] 윤석열 구속기소, 신속한 재판으로 준엄히 단죄해야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3.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4.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사설] 김용현 궤변 속 계엄 찬성했다는 국무위원 밝혀내야 5.

[사설] 김용현 궤변 속 계엄 찬성했다는 국무위원 밝혀내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