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 시인
거실에 있는 장난감 중에 아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텔레비전(TV) 리모컨이다. 다른 것은 갖고 놀아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리모컨은 잡자마자 엄마가 채가기 때문이다. “안 돼! 이건 더러워.” 다른 장난감은 정기적으로 씻고 소독하지만 리모컨은 전자제품이니 그럴 수가 없다. 꼭 더러워서만은 아니고, ‘응팔’의 키스신이나 ‘복면가왕’의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주세요” 다음 장면이 아기의 손짓 한 번에 사라져서이기도 하겠다. 보통은 다른 장난감과 마찬가지로 리모컨도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놀이를 선보였다. “아인아, 여보세요, 해봐” 그랬더니, 리모컨 잡은 오른손을 오른쪽 귀에 척 갖다 대는 거다. “봤지? 전화 놀이야.” 아직 말은 잘 못하지만, 전화 놀이의 핵심은 말이 아니다. 전화를 걸거나 받는 사람 누구나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여기 좀 보세요란 뜻이다. 말하는 게 아니라 보는 것, 이것이 관건이다. 아기가 리모컨을 들고 하려는 말을 길게 이어붙이면 바로 ‘밀양 아리랑’이 된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래, 아기야. 너를 꽃처럼 보마. 그러고 보니 전화기 대신 리모컨을 든 것에도 이유가 있었구나. 아기는 지금 리모컨을 들고 엄마 아빠를 리모트 컨트롤하고 있는 거다. 웃고 박수도 좀 쳐보라고 조종 버튼을 누른 거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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