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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미망인’이란 말 / 김하수

등록 2016-01-24 19:13수정 2016-01-24 19:13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옛날보다는 꽤 평등해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여전히 눈에 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쓰는 어휘 속에도 배타적인 성적 구별을 노리는 뜻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먼저 죽어 홀로 남은 여성을 우리는 ‘미망인’이라고 부른다. 속되게 표현하는 과부니 과수댁이니 하는 말보다 매우 세련되고 다듬어진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섬뜩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뜻을 염두에 둔다면 가까운 사람들한테 쉽게 쓸 수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원래 이 말은 1인칭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남편을 여읜 여성이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따라서 이 말은 남편을 잃은 여성이 남편을 어서 따라가고 싶다는 매우 감상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것이 요즘은 별생각 없이 2인칭, 3인칭으로 쓰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가당치 않은 용법이다.

결론을 좀 급하게 말한다면 요즘은 배우자를 잃었을 때 받아들이게 되는 정신적인 아픔과 마음의 상처를 그리 극적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그 단어가 나타난 이삼천년 전의 중국에서는 배우자를 잃은 여성의 삶이란 정말 하늘이 무너진 것보다 더한 충격이었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일정한 애도가 끝나면 담담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더 상식적이고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애도 기간에 홀로된 배우자를 굳이 거명해야 한다면 “돌아가신 고 아무개의 부인 누구누구께서 …” 하는 식으로 풀어 말하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반대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경우에 홀로된 남편을 가리키기도 편하지 않을까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양성평등이라는 것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개혁도 필요하고, 나아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편견과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말과의 투쟁도 필수적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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